한국교회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피로 써 내려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3위 순교성인, 124위 순교 복자, 조선 왕조 치하 순교 133위 외에도 수많은 무명 순교자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기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신앙 선조들의 용기와 희생, 순교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순례길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수도권 : 의정부교구 ‘신앙의 길’
의정부교구는 2014년 순례길 ‘신앙의 길’을 선포했다. 총 7구간 중 1~3구간은 ‘순교자의 길’이며 4~7구간은 ‘목자의 길’이다. 경기도 양주 지역에 조성된 순교자의 길은 ▲1구간 신유박해의 길(9km) ▲2구간 병인박해의 길(10km) ▲3구간 무명 순교자의 길(12.5km)로 구성돼 있다.
1구간은 신유박해(1801년)로 순교한 하느님의 종 황사영(알렉시오)의 묘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황사영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 상황을 담은 「백서」를 작성해 중국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려 했으나 압수당하고 말았다. 순교자의 묘는 1980년에서야 확인됐으며, 송추성당 안에 자리한다.
2구간에는 병인박해(1866년) 때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성 남종삼(요한)과, 더불어 순교하거나 유배를 간 성인의 부모, 아들의 묘역이 있다. 성인은 ‘승지’ 벼슬에 올랐으나 공직이 신앙생활에 방해되자 성인의 부친처럼 관직을 버렸다. 성인과 가족의 묘역은 훗날 손자가 조성했으며, 서울대교구 길음동성당 묘원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3구간에 있는 양주순교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다섯 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곳이다. 교구는 「치명일기」의 기록과 여러 증언을 통해 ‘순교지’라는 표지석을 찾아낸 뒤 2016년 성지로 선포했다. 1866년 김윤오(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 박 서방이, 1868년에는 홍성원(아우구스티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성지 옆에는 양주 관아지가 최근 복원됐다.
수도권에는 이외에도 서울대교구 ‘서울 순례길’, 수원교구 ‘디딤길’ 등이 있다. 서울 순례길은 교황청이 인정하는 국제 순례지로 선포됐으며, 24곳의 순교 성지·순례지·교회 사적지로 이뤄져 있다. 9월 28일까지 정기 희년을 기념해 ‘희망의 순례자들’을 위한 ‘9월愛 동행’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수원교구 디딤길 17코스에는 미리내성지, 수리산성지, 천진암성지 등 박해 시대 교우촌이나 순교자들과 관련된 여러 성지가 포함돼 있다.
※문의: 031-850-1498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
[순례 안내] 무명 순교자의 길(12.5km)
양주 백석성당→대모산성→양주순교성지→불곡산 숲길→양주 백석성당
충청권: 대전교구 ‘갈매못 순교성인 4위 유해 이장 길’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는 조선시대 수군들의 훈련장으로,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던 외연도와 가까우면서도 당시 국혼을 앞둔 서울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이유로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쓰였다. 이곳에서는 1866년 3월 3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다섯 명의 순교자가 처형당했다. 바로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매트르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루카), 그리고 성 장주기(요셉)이다.
병인박해가 일자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교구장이 된 지 23일 만에 충남 내포 거더리에서 체포됐으며, 오매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는 주교의 편지대로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음날 자수해 거더리로 끌려왔다. 황석두는 압송되는 주교를 따라가다 함께 붙잡혔으며, 장주기도 회장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됐다.
다섯 순교자가 갈매못에서 처형된 뒤, 신자들은 풍랑과 뇌우 속에서 12일간 바닷길과 산길을 거쳐 황석두를 제외한 순교자 네 명의 유해를 서짓골에 안장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유해 운구에 참여한 신자들도 발각돼 순교했다. 실제 유해 이장 길은 갈매못부터 서짓골까지 29km이지만, 도보 순례를 위한 길은 완장포구부터 서짓골 성지까지 9.5km 구간이 잘 정비돼 있다. 성인 4위의 안장 일을 기념해 대전교구 서짓골 성지는 매년 9월 1일 단체 도보 순례를 개최한다. 성인들의 유해는 그 후 일본을 거쳐 지금은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성지에 안장돼 있다.
성 황석두의 유해는 가족들이 거두어 성인이 살던 교우촌인 충남 부여의 현 삽티 성지 자리에 모셨다. 대전교구 삽티 성지는 매년 성인의 유해 안장일인 5월 29일에 당시 교우촌이었던 도앙골성지까지 왕복 도보 순례를 연다. 이 외에도 충청권에는 버그내길, 내포천주교순례길, 해미국제성지순례길 등이 잘 조성돼 있다.
※문의: 041-836-9625 대전교구 서짓골·삽티·도앙골성지
[순례 안내] 갈매못 순교성인 4위 유해 이장 길(29km/9.5km)
갈매못순교성지→여후해→솔섬→완장포구→웅천읍내→웅천 성동리→주산 화평리→보령댐→서짓골성지
강원권: 원주교구 ‘님의 길’
원주교구 순례길 ‘님의 길’은 강원 원주와 횡성, 제천에 걸쳐 조성된 200km가 넘는 길이다. 이 중 8, 9구간인 ‘2길 순교길’은 ‘최해성 요한길’이라 불린다. 이 길은 복자 최해성(요한)이 살았던 원주 교우촌 서지마을에서, 복자가 순교한 강원 감영까지 끌려간 길이다.
복자 최해성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당한 조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교리를 배웠으며, 기해박해(1839) 때 강원감영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고모인 복자 최 비르지타는 신유박해 이전에 입교해 남편과 신앙생활을 했으며, 유배당한 남편이 사망하자 오빠인 복자 최해성의 부친을 찾아 서지마을로 왔다. 그러던 중 기해박해로 끌려간 복자 최해성을 찾아 강원 감영에 갔다가 신자냐는 물음에 답한 뒤 옥에 갇혀 순교했다.
순교길은 총 37.8km이며, 세부적으로 대안리공소를 기점으로 다시 ‘2-1 최해성 요한길’(15.9km)과 ‘2-2 최 비르지타길’(21.9km)로 나뉘어 있다. 원주교구는 최해성 요한길이 시작되는 서지마을에 기념 성당과 순교자기념관을 건립하고 6월 21일 봉헌했다. 대안리공소는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자 형성된 대안리 교우촌 신자들이 1892년 설립했다.
교구는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님의 길 전 구간인 14구간을 한 구간씩 단체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순교자 성월에는 님의 길을 구간별로 걷는 단체 도보 순례도 열고 있다. 순례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나 문자 등으로 가능하다.
※문의: 033-745-3217 원주교구 서지마을
[순례 안내] 최해성 요한길(37.8km)
서지마을→비두리 십자가의 길→(옛)술미공소→대안리공소(기점)→후리사공소→무실동성당→강원감영→원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