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지순례가 곧 삶입니다] (2) ‘희망의 순례’ 숨은 공로자 ‘도서출판 기쁜소식’ 전갑수 대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1846년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984년 5월에 시성됐지만,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인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2016년 4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된 후 아직 시복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선한 목자 상을 심어 준 최양업 신부를 따르기를 원하면서 그가 하루라도 빨리 시복시성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2022년 ‘희망의 순례’를 시작했다. 어떤 일에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숨은 주역이 있듯, ‘도서출판 기쁜소식’ 전갑수(베르나르도·71) 대표는 ‘희망의 순례’를 소리 없이 열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희망의 순례’ 산파역


서울 성북동 기쁜소식 출판사 대표 집무실에 들어가면 커다란 지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에는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순례 목적지 서른 곳이 표시돼 있다. 지도 한편에는 희망의 순례를 신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 대표가 제작한 포스터도 붙어 있다.


대부분의 신자라면 지도를 보며 희망의 순례 목적지 30곳의 위치와 명칭만을 생각할 테지만 전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어느 성지에는 화장실 설치가 필요하고, 어느 성지는 도로가 아직 포장돼 있지 않아 차로 가기 힘들고, 어느 성지는 가까워 보이지만 우회해서 가느라 지도에서 보기보다 이동 거리가 길다는 등의 사정을 꿰뚫고 있다.


전 대표가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희망의 순례에 팔을 걷어붙인 계기가 있다. 2021년은 성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이었고, 한국교회는 그해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기대했지만, 교황청에서 기적 심사가 통과되지 못해 시복이 이뤄지지 못했다. 전 대표는 두 사제의 탄생 200주년임에도 성 김대건 신부에 비하면 최양업 신부에게 너무나 관심이 부족한 한국교회 모습에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자문했다.


젊었을 때부터 성지순례에 열심이었던 전 대표는 신자들의 성지순례 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시킨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기획에도 참여한 경험을 살려 최양업 신부 발자취가 남아 있는 국내 성지와 교우촌 등을 답사하며 희망의 순례를 구상했다. 


1988년부터 2005년까지 최양업 신부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 주임으로 사목했던 배은하 신부(타대오·원주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도 때마침 2021년에 황창연 신부(베네딕토·수원교구 성필립보생태마을 원장)와 ‘최양업 신부님 따라가기’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며 순례길 조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신학교 동창이기도 한 전 대표와 배은하 신부는 서로 모른 채로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순례길 조성을 구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원주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의 격려, 당시 교구 총대리 곽호인(베드로) 신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더해지면서 희망의 순례는 급물살을 탔다.


전 대표는 최양업 신부 선종 161주기인 2022년 6월 15일에 맞춰 희망의 순례 안내 책자인 「희망의 순례자」를 발간했다. 「희망의 순례자」를 한 손에 든 신자들은 2022년 8월 18일 최양업 신부 탄생지인 대전교구 청양 새터에서 첫 단체순례를 시작해, 올해 8월 7일 2차 완주까지 끝냈다. 9월 4일에는 수원교구 용인 한덕골 교우촌에서 3차 순례를 시작했다. 


황창연 신부는 2024년부터 단체 순례 버스 대절 비용을 지원하며 순례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 대표는 출판사 업무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희망의 순례가 있는 날에는 생업을 뒤로 한 채 성지 안내 봉사를 포함해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왜 최양업 신부인가?


「희망의 순례자」는 초판 발행 후 순례자들이 전해 주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2023년 개정판을 발행했고, 현재까지 4만여 부가 보급됐다. 단체 순례에는 1500명 이상이 한꺼번에 참여할 때도 있을 만큼 호응도가 점차 커지고 있다. 가족 단위 순례자도 상당히 많다.


전 대표가 희망의 순례에 열과 성을 다 바치는 이유는 최양업 신부야말로 ‘진정한 사목자’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단 다섯 가구가 있는 교우촌을 찾아가기 위해 100리 밤길을 걸어갔고, 잠깐의 만남 뒤에 눈물로 헤어지던 목자의 모습을 오늘을 사는 신자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 대표는 신자들이 희망의 순례에 보다 많이 참여해 시복을 위한 전구기도를 바치는 노력이 교황청에 전달될 때라야 최양업 신부 시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건강이 안 좋거나 운전을 할 수 없어 희망의 순례에 참여할 수 없다는 신자들의 사연을 듣고, ‘묵주기도 희망의 순례’를 고안한 것도 같은 이유다. 희망의 순례 총 이동거리인 3650km를 1km에 묵주기도 1단씩 바치면서 마음으로 순례하고, 실제 순례하는 것처럼 하루에 20단까지 바칠 수 있도록 「희망의 순례자」 개정판에 반영했다.



전 대표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이 이뤄져야 그동안 부족했던 연구가 활성화되고 신자들이 몰랐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즈음해서는 희망의 순례를 알리는 대형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모든 본당과 성지에 발송했고, 알기 쉽게 요약한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생애」 개정판도 2024년 9월 펴냈다. 최양업 신부를 신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려는 전 대표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전국의 많은 신자가 최양업 신부님 발자취를 따라 희망의 순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럼으로써 그분이 시복시성 되는 것뿐입니다.”



[전갑수 대표 추천 성지] 부산교구 죽림굴 신앙 사적지
죽림굴은 최양업 신부가 경신박해(1860년)를 피해 3~4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다. 1986년 부산교구 울주 언양본당 주임이던 김영곤(시몬) 신부가 본당 신자들과 주변을 탐사해 죽림굴을 발견했다. 최양업 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1860년 9월 3일 마지막 편지를 썼다. 선종 1년 전에 쓴 편지에서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성무집행 연말보고를 함께 적을 만큼 사목자로서 강한 책임감을 보여 주었다. 전 대표는 “최양업 신부님은 밥을 짓다 연기가 나면 은거지가 알려질 수 있어 죽림굴에서 생쌀을 드셨다”며 “죽림굴을 순례할 때면 최양업 신부님이 걸어간 고난의 길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성지와 달리 죽림굴은 험한 길을 무조건 걸어야 도착할 수 있어 순례자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순례지이지만 힘든 것 이상 큰 은총을 체험한다”며 “신앙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가장 큰 선물은 순교 신심이라는 것을 최양업 신부님이 은거했던 죽림굴을 순례할 때마다 깨닫는다”고 밝혔다. 죽림굴 입구에서 죽림굴까지는 약 3.4km 거리이며, 길이 험해 왕복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죽림굴 내부에서 100~150명 정도가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9-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13

마태 19장 21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