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지만 기원을 알 수 없다. 후기 니케아 역사가들에 따르면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모친 헬레나가 성지를 여행하면서 3개의 십자가가 숨겨진 곳을 발견했고, 그중 한 십자가를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로, 나머지 두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이들이 매달린 십자가라고 믿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주님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용도는 사형 도구였다. 처음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을 때 사형 도구가 상징인 것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한 이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는 주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상본과 성경이 상징으로 더 애호되었다. 많은 교회가 성 십자가의 조각들을 나누어 보유하고 있지만, 진위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할 수 없다.
13세기경 당시 도미니코회 수사였던 제노바대교구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대주교의 「황금 전설(성인들의 이야기)」은 성 십자가의 유래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성 십자가는 아담의 셋째 아들 시신의 입에 심은 ‘자비의 나무’의 씨앗 3개에서 자란 3그루의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여러 세기가 지나고, 그 나무는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그녀는 이 목재들이 일으키는 경이로운 기적에 놀라 무릎을 꿇고 나무에 경의를 표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녀는 솔로몬과 만났을 때 그 다리의 나무 조각이 유다인과 시바왕국에 하느님의 계약을 대신하여 드러냈다고 전했고, 솔로몬은 그의 백성들이 파멸할까 두려워 그 목재를 다시 땅에 묻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나무는 그리스도가 못 박힐 십자가의 재료가 되었으며, 그 십자가가 헬레나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님의 상징은 십자가뿐 아니라 가시관과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까지 포괄한다. 특히 ‘롱기누스의 창’으로 불리는 창은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괴수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에서도 무적의 무기로 묘사되고 있다.
바이올린 소나타로 유명한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는 우아하고 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7개 말씀’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첫 곡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아(O vos omnes, qui transitis per viam)’는 도입부부터 듣는 이를 매료시킨다. 청순한 독창자의 목소리는 고난의 길 위에 서신 주님이 오히려 사형대 위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을 노래한다.
십자가는 상징일 뿐이고 우리가 봐야 할 본질은 그 위에서 죄 없이 죽어가시는 주님과 그분의 넘치는 사랑이다. 프랑크는 단순히 작곡한 것이 아니라 주님 목소리를 대신한 전달자로서 은혜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끝없는 사랑과 같다는 것을 이 멋진 작품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느낀다.
세자르 프랑크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7개 말씀’
//youtu.be/YrXULShqY-I?si=4HwJKfYTATw7orK6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