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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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추듯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에서 김현준 신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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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축제에서 복사단 친구들과 함께 토바스(Tobas)라는 춤을 추고 있는 모습. 김현준 신부 제공


다양한 원주민 문화가 공존하고
각 지역과 민족마다
고유한 전통춤이 있습니다

알려진 전통춤만 해도 100종
춤마다 독특한 의상과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어
춤을 통해 민족성과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먼저 손을 내밀며
공동체로 초대해 준 이들처럼
언젠가는 저도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렇게 초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Vámonos a bailar!(함께 춤추러 갑시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현재 저는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대교구에서 선교 사목 중인 김현준(대구대교구) 베네딕토 신부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오늘은 어떤 에피소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눌지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저의 기쁨과 행복이 이 지면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잔잔하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알려진 전통춤만 해도 100종

어릴 적부터 저는 춤추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길을 가다 마을 삼촌들이 춤을 추면 100원씩 주셨고, 저는 나가서 신나게 춤을 추며 마을을 휩쓸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남들 앞에서 춤추는 것이 부끄럽다기보다는 즐겁고 기쁜 일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볼리비아는 어린 시절의 기쁨을 주는 곳입니다. 볼리비아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는 기쁨이며,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그들만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정식 명칭은 ‘볼리비아 다민족국’(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입니다. 이 명칭처럼 볼리비아는 다양한 원주민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며,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국가입니다. 그래서 각 지역과 민족마다 고유한 전통춤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산타크루즈 원주민에게서 유래된 경쾌한 춤인 초베나(Chovena),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을 표현한 토바스(Tobas), 아프리카계 볼리비아 공동체에서 유래된 사야(Saya), 이 외에도 카포랄(Caporal), 틴쿠(Tinku), 모레나다(Morenada) 등 춤마다 독특한 의상과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어 춤을 통해 민족성과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전통춤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고 하니, 그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춤과 음악,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전통춤이 아직 사랑받고 있고, 많은 이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사목하고 있는 Cristo Salvador 본당에서는 매년 본당 설립일을 기념해 큰 축제를 엽니다. 이날은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본당 내 여러 단체가 전통춤을 준비해 무대에 오릅니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공연 행사’쯤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축제 때 본당 교사회 친구들과 함께한 모습.
 
본당 교사회 친구들과 와이뇨 데 코차밤바(huayño de cochabamba)라는 춤을 추는 모습. 코차밤바 지역 공동체에서 이어져오는 춤으로 huayño는 케추아어로 ‘춤추다’ 또는 ‘흔들다’라는 뜻이다. 삶의 고단함에서 희망과 사랑을 표현한 춤이다.
 
볼리비아에서 처음으로 췄던 춤. Esperanza 공소 복사단 아이들과 함께 틴쿠(Tinku)라는 춤을 췄을 때 모습.

“함께 춤추러 나가요”

저 역시 이날만큼은 사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과 함께 춤을 연습하고 무대에 오릅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과 긴 연습 시간에 지칠 때도 많지만, 아이들은 늘 웃으며 이렇게 말해줍니다. “¡Vámonos a bailar juntos!”(함께 춤추러 나가요!)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옵니다. 공연이 잘 마무리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그 깊은 실감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언어나 문화, 사고방식 차이로 인해 저도 모르게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외부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줍니다. “함께 가자”고, “함께 살자”고 따뜻하게 초대해줍니다. 저는 그 손을 잡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이들과 한마음으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먼저 손 내밀며 공동체로 초대

어쩌면 삶은 하나의 큰 무대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무대 아래에서 박수를 치는 관객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어깨를 흔들고 숨 쉬며 같은 리듬에 발을 맞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들의 아픔과 기쁨, 희망과 일상에 살아 있는 존재로 함께 머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저는 부족한 선교사입니다. 말도 서툴고, 춤도 어색하지만, 저는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 참 좋습니다. 춤을 추듯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에서 저는 매일 예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먼저 손을 내밀며 공동체로 초대해 준 이들처럼, 언젠가는 저도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렇게 초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Vámonos a bailar!”(함께 춤추러 갑시다!)

 

김현준 신부 / 대구대교구 /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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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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