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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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락한 세상에 하느님이 내신 너무나 쉬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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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시성된 카를로 아쿠티스에 대해 내 후배가 말했다. “그 사람이 뭘 했다고 시성이 됐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나는 그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주문해 읽었다. 그리고 한 주 내내 그의 생각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일도 드문 일이었다. 후배의 말대로 겨우 이 지상에서 15년 동안 산 소년이 뭘 했길래 수많은 기적이 그를 통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나는 책을 다시 펼치고 그가 한 일을 목록화해 보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기가 죽은 친구들 집으로 초대해서 밥 먹기, 왕따당하는 친구에게 말 걸기, 놀이터에서 장난감을 빼앗겨도 화내지 않기, 규칙을 어기는 친구에게는 화내기, 쓰레기 줍기, 버려진 동물 집으로 데려오기, 거리의 청소부에게 인사하며 안부 물어주기, 할머니에게 부탁해 후식까지 챙겨 노숙자에게 나르기, 신발을 한 켤레 더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며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 달라 부탁하기, 사춘기 시절 예쁜 여학생에게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자 “소피아가 개야? 왜 휘파람을 부니?”라고 화내기. 


부유한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몇 벌이 없는 그의 옷을 가지고 친구들이 촌스럽다며 놀리자, 그는 정색하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하게 태어나. 명품이 뭐가 좋아? 모두 똑같이 생겼잖아. 남을 모방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좋겠니?”


내 머리카락이 쭈뼛해진 것 같았다. 지난번 소개했던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그도 썼던 것이다. “악은 이상하게도 별 특징들이 없이 비슷비슷하다. 무조건 권력자에게 아부하며 그를 따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선해지는 방법은 참 쉽다. 성자들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저 자기 자신이 되면 된다.” 70세 노학자가 쓴 글과 15세 소년이 한 말은 이렇게 쌍을 이루어 내게 들려왔다. 


진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비슷하게 선포된다는 말이 떠올랐던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카를로 아쿠티스가 성경을 끼고 다니며, 근엄하게 있었던 소년이었나? 아니, 그는 혼자서 색소폰을 불었고, 컴퓨터왕이었다. 혼자서 성체의 기적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프로그램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었다) 만들어 보급했다. 부모는 그가 죽은 후 그의 컴퓨터를 열어보았는데, 금지된 사이트에는 단 한 번도 접속한 기록이 없었다. 급성 백혈병으로 죽음을 앞둔 그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슬퍼하지 마세요. 슬픔은 자기 자신을 향한 시선이지만, 행복은 하느님께 시선을 두는 거예요. 저는 늘 하느님 맘에 드는 일을 했으니까 편안히 죽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죽은 뒤에 동생들이 태어날 거예요.” 그의 예언대로, 카를로 아쿠티스가 죽은 후 그의 엄마는 43살에 쌍둥이를 낳았다.


기록을 정리하면서 나는 약간 울었다. 이 중에서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20세기 초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소화 데레사가 우리에게 큰 성녀가 되었듯이, 나는 21세기 밀레니엄의 첫 성인이 된 아쿠티스가 큰 분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부끄러운 내 마음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산을 옮길 필요도, 병자를 낫게 할 필요도, 거대한 성당을 세울 필요도, 신대륙에 가서 공을 세울 필요도 없다. 걸작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랑으로 살면 된다. 그것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더 있더냐?”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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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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