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것은 코로나가 끝나던 2022년 여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사형수는 다른 곳에서 사고를 저질러 서울구치소로 이감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다짜고짜 “어떻게든 죽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얼굴은 엄청난 어둠에 덮여 있었고, 먹지도 않아 몸은 거의 어린아이와 같이 말라 있었다. “정말 믿음이 있어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죽고 싶어요.” 실제로 그 위험 때문에 그는 특별 관리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한가지 숙제를 내주고 싶어요. 하느님은, 그래요 혹시 계신다면, 지금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걸 함께 말해봅시다.”
그는 아예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약간 충격을 받는 것도 같았다. 그 후로 3년 동안 나는 일 년에 서너 번 그를 만나 미사를 드렸다. 복음을 나눌 때 나는 그에게 ‘힘들 테니 그저 묵주기도만을 하자’고 했고, 그는 지난여름부터 하루에 100단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달 그를 만났다. 정말 깜짝 놀랐다. 얼굴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듯했다. 만나지 못했던 몇 달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당연히 보였다. “매일 100단을 해요. 가끔은 80단밖에 못 해요. 그런데 괴로워요. 제 사건(범행)이 보여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신부님과 우리 봉사자들은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미사 중에 거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말했다.
“묵주기도 중에 그것이 보여서 정말 괴롭습니다.”
내가 물었다 “그래도 그 고통이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 죽고 싶다던 그 고통과는 다르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는 심지어 아름다운 빛까지 어리고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 힘은 무엇인가. 나는 약간의 충격까지 받았다. 묵주를 강력히 권한 것은 나였지만 ‘묵주가 이렇게까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는 아직 내 첫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묵주 속에 그 모든 대답이 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형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심하게 갈라진다. 어떤 이들은 “참 좋은 일을 하시네요”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은 죽어야 해요. 사형제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하기도 한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청소년 캠프에 침입하여 아이들 77명을 죽인 브레이비크가 있었다. 노르웨이 국민은 당연히 사형제의 부활을 원했다. 그런 인간을 우리 세금으로 살려둘 가치가 있을까. 이에 대해 총리 스톨텐베르그는 담화를 발표한다.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간애여야 한다.”
저들의 무기인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더 많은 관용과 인권으로 이것을 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에게 이런 말과 품격을 전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린다. 선진국이란 돈만 많아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사형제는 부활해야 한다는 이들에게 나는 대답한다. “솔직히 가끔 생각해요. 하느님의 저울로 달면 제 죄가 저 사람들보다 가벼울까요? 진짜요?”
돌아오는 길에 나도 요즘 들어 게으르게 바치던 묵주를 잡았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 주 하느님의 말이다. 오히려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느냐?”(에제 18,23)
묵주, 내 삶의 동아줄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