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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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음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7.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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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묵주를 든 두 소녀’, 유리건판, 1910년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십자성호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새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오늘 하루 주신 모든 은총과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은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전 존재가 십자가와 하나됨을 고백하고, 타인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을 증거한다.

가장 짧고도 명료한 십자성호 기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나를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심을 절로 드러낼 뿐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로 모든 이를 구원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일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개인의 도량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이다. 주님께서 기도의 완전한 본보기이시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자주 고독 속에서 은밀히 기도하셨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절대적 확신과 사랑, 순명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끗한 마음과 생생하고 꾸준한 믿음, 자녀다운 대담성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촉구하시며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청하라고 권고하신다.

“신약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무한히 선하신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령과 맺는 생생한 관계이다. 하늘 나라의 은총이란, 거룩하고 고귀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은 언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확장되어 가는 그만큼, 그리스도다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차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565)

이 주님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강림 날부터 ‘한자리에 모여’(사도 2,1)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 1,14) 신앙생활을 성장시켜오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듣고 읽으며’ ‘성찬례에 참여’하고 ‘성사 생활과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진 2>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년’, 유리건판, 1920년대, 삼원봉 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어린이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을 방문해 ‘묵주를 든 두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사진 1> 사진 파일에는 ‘1910년대’라고 적혀있지만, 두 소녀의 사진 속 배경인 한옥 성당과 벽돌담이 내평성당과 흡사해 아마도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내평성당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많은 풍속 사진을 담을 때 촬영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십자가 목걸이를 한 두 소녀는 다소곳이 묵주를 쥐고 있다. 기도하는 손은 언제 봐도 거룩하고 아름답다. 20세기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손이 얼굴 다음으로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했다. 손이 개인의 내·외면의 처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손을 주신 이유는 그 안에 영혼을 들고 다니기 위함’이라는 교회 속담도 있다. 묵주를 다소곳이 쥐고 있는 두 소녀의 손은 ‘겸손’을 드러낸다. 겸손은 기도의 바탕이다. 교회는 겸손을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요소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신자들은 곤경과 위험이 닥칠 때 성모님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는 1920년대 만주땅 간도 삼원봉성당에서 기도하는 두 소녀와 소년을 촬영한 필름 원판이 있다.<사진 2·3> 삼원봉성당은 1909년 5월 1일 훗날 초대 대전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는 라리보 신부가 첫 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사목활동을 펼친 유서 깊은 신앙 공동체다. 1923년부터 성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맡았고, 덕원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가 이곳 삼원봉 출신이다.
<사진 4>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 랜턴 슬라이드, 1927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무릎 꿇음은 극명하게 겸손 드러내는 자세

“삼원봉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발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면, 매일 저녁 성당에 모여 공동 저녁기도를 바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녀 학생들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선창을 한다. 어린아이들도 짧지 않은 저녁기도를 쉽게 따라 익힌다. (?) 신자들이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한국 교회 초창기를 떠올려도 쉽게 이해가 된다. 본당 공동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하르트만노 에벌 신부, 1926년 「삼원봉 본당 연대기」 중에서)

삼원봉은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곳이다. 포도주와 성혈이 얼어 촛불로 성작을 데워가며 미사를 지내야 했다. 사진 속 소년소녀들의 모습에 그 추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것보다 더 극명하게 겸손을 드러낸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 행동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표현한다. 무릎을 꿇는 것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내적 기도의 외적 표현이다. “하느님께서는 내적 기도에 몸까지 결합시키는 외적 표현도 원하신다. 왜냐하면, 외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완전한 찬미를 이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703)

‘기도하는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와 신학생’<사진 4> 은 1927년에 촬영됐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알찬 시간이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 역시 우리 안에 머무시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육신과 영혼의 눈길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고 그분께 마음을 기울여 하느님 말씀을 경청한다. 이 경청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기도 중에 ‘예’(Amen)라고 응답하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Fiat)라는 순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분리될 수 없다. 기도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사랑에 일치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기도는 사랑의 실천이 동반됨을 잊지 말자.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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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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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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