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라는 좋은 스승이 계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어요. ‘이 신부 기도하는가?’ 그러시면 맨날 뒤통수를 긁으며 ‘잘 못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기도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네. 그런데 30분이라도 성찰이 몸에 배어 있으면, 마음이 이슬 맺힌 풀잎과 같네.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바라지 않고 머물러 있기만 해도 그렇네.’ 이 말씀을 들을 때 추기경님이 나보다 훨씬 바쁘신데, 나는 왜 기도하지 못할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8월 마지막 토요일, 나는 한 사제의 은퇴미사가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42년 간의 사제 생활 중 20여 년을 군종사제로 살아온 이성운 미카엘 신부님은 신자들을 1층 로비에서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맞이하고 계셨다. 나는 세 번의 군 생활을 하신 신부님의 특이한 사목 이력이 궁금했었다
첫 번째 군 생활은 1975년 해병대 293기 입대였다. 그 후 사제가 된 그를, 교회는 두 번째 군 생활인 군종사제로 부대에 파견한다. 군종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장교 훈련을 똑같이 받아야 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꼭 꾼다는 악몽이 바로 ‘재입대하는 꿈’인데, 신부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 번째에 해당하는 군 생활을 다시 하게 된다. 신부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989년 11월이었어요. 저는 대위로서 4년 간의 군 사목을 마치며, 정든 장병들과의 송별미사도 다 마치고 그랬는데, 당시 군종교구장 주교님이 장기 복무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 이제 와서 왜 그러십니까? 안 됩니다. 밖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했지요. 물론 여러 신부님이 그런 제안을 이전부터 했지만, 거절했었습니다. 그리고 전역 신고도 드릴 겸 교구로 가서 김수환 추기경님께 인사를 드렸지요. 그런데 그날 뵐 때 느낌이 좀 이상했습니다. 갔더니, 추기경님께서 갑자기 그러시는 겁니다. ‘이 신부, 참 고마워~ 어려운 결정 해줘서. 군종교구장 주교님을 통해서 들었어.’ 기뻐하시는 추기경님 앞에서 ‘예?’ 하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교회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망연자실 아무 말도 못 했지요. 그냥 집에 가서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안 되겠지만, 제 의사와 상관없이 전역이 취소되고 하루아침에 그렇게 세 번째로 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군종후원회 일을 계속했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네 번째까지 군 사목을 한 것일 수 있겠네요.”
나는 그 당시의 신부님을 한 번 떠올려 보았다. 한 사제로 살면서 꿈꾸던 일이 바로 ‘가난한 청년·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자’였는데 예기치 않게 세 번째 군 생활을 다시 해야 했을 때, 신부님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속에서 불이 날 텐데… 즉시 ‘예!’라고 답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아무리 천사의 소식이 기쁘다 하여도, ‘재입영통지서를 들고 오는 천사’라면 이는 악몽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성모님도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바로 답하시기 전에 곰곰이 새겨 보셨다고 성경은 전한다.
“‘교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휘몰아치는 마음에 힘들었습니다.” 그때의 힘겨운 상황을 신부님은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그러나 이분을 그렇게 전역 취소까지 시키면서 군 사목자로 두고자 했던 당시 교회의 결정 또한 쉽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신부님은, 남달리 장병들에게 잘하셨다는 말을 주변으로부터 자주 들었고, 교회와 어른들을 각별히 공경하는 분이셨다.
피하고 싶은 일을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한 인간의 고뇌는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군종교구장 주교님의 결정에 순명하셨다는 사실을 보면, 원치는 않으셨지만 군 사목 안에 분명 신부님의 오랜 소망 가운데 하나였던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헌신’이 이미 이뤄져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속으로 곪아갔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 춘천교구 동창 송병철 야고보 신부님이 같이 있으면서 이런 저를 자주 위로해 줘서 안정을 찾았지요. 그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여기로 보내신 것은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라는…. 그때부터 하느님의 뜻을 찾기로 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 있는 후배 군종 사제들을 잘 챙기고 돌봐주는 게 내 부르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서요.”
누군가는 자신의 군 생활을 떠올리며, ‘신이 버린 땅’, ‘군견들이 낙오하는 땅’ 등 평생 쳐다보지 못할 자리로 치부하는 게 바로 군대 생활이라 했지만, 신부님은 ‘몸과 마음이 고단한 청년들이 있는 곳이 바로 군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방식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기도는 매번 이뤄지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이뤄졌다.
신부님의 은퇴미사에는 많은 사제와 신자가 오셨다. 나는 생각한다. 이 순간 은퇴 사제를 위해 그동안의 노고를 ‘축하’ 해드리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마지막 본당을 마치시는 뒷모습을 아쉬워하며 슬퍼해야 하는 것이 우선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신학생이던 시절에, 할아버지 신부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사제는 한 번 떠난 본당을, 다시 찾아가지도 말고, 그 신자들을 따로 만나서도 안 된다’라고. 이유인즉슨 ‘떠난 사제에 대한 추억이 너무 깊으면, 새로운 사제가 본당 사목을 하기 어렵다’는 연유에서였다. ‘뭐, 그렇게 빡빡하게 구는가?’라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워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떠난 사제는 이전 본당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숨기고 살아가겠지만, 본당의 신자들에게 사제의 마지막 미사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 분명 아쉽고 그리울 것이다. 한 사제와 인생 중에 만난 시간은 큰 인연일 테니까. 그리고 떠나는 사제를 눈물로 보낸 몇 분 후에, 바로 새로 부임한 사제를 향해 웃으며 환영하는 것 또한 인생의 순리라는 것을 신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은퇴미사 후에 통화를 하게 된 신부님의 목소리는 밝았다. 큰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안긴 어린이처럼. 그분의 뜻을 따르는 순명이란 대체 무엇일까. 피하고 싶던 인생의 물살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의 물길을 깨닫는다. 순명에는 은퇴가 없듯이, 이성운 미카엘 신부님은 또 다른 부르심에 오늘도 응답하고 계셨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