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가 위로이자 기도가 됐으면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모두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시대니까요. 힘들고 지친 분들께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연필보다 붓을 먼저 쥔 그는 4살 무렵부터 붓을 배웠다. 학창 시절부터 서예로 국내뿐 아니라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15세에 전남 영광 묘장서원의 묘정비를 쓸 정도로 일찍부터 서예가로 활약했다. 그렇게 평생을 붓과 함께해온 이동천(미카엘) 서예가가 환갑의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정(二井) 이동천 서예전 ‘천상운집(千祥雲集)’이 10월 26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1898 1·2전시관에서 열린다.
“서예를 한다고 하면 보통은 먼저 전시회를 하겠지만, 저는 글씨들을 분석해 책을 냈습니다. 사실 책은 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에 더 어려운 작업이지요.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피곤한 삶이지만, 저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개인전이지만, 이 서예가가 붓을 놓고 지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서예에 매진하며 고전 서법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몰두해 왔고, 「이동천 위체서 천자문」(1996년) 등도 집필했다. 일회적인 전시보다는 서법의 본질을 책으로 엮어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미술품 감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명지대학교 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예술품 감정학과’를 개설, 초대 주임교수로 한국 감정학 발전의 기틀을 닦은 이 분야 대가다.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감정하는 감정학의 방식으로 왕희지에서 추사 김정희에 이르는 명필을 분석한 「신(神) 서예」를 2023년 출판하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글씨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 작품이 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쓰거든요. 그래서 52개 작품이 모두 다 다르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정말 모든 걸 바치는 글씨인 거죠.”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느껴지는 글씨. 그의 탁월한 서예 비결은 그가 창안한 전번필법(轉飜筆法) 덕분이다.
붓을 굴리고 뒤집으며 글을 써가는 전번필법은 서예의 거장들이 직관적으로 사용한 서예 비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현대적으로 계승한 방식이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갤러리1898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의정부교구 사제들을 비롯해 서울대교구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 등 여러 사제도 그에게 전번필법을 배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서예가에게 서예란 “‘하느님의 자기소통’이 이뤄지도록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52점의 작품도 그에겐 글씨이기 전에 기도다. 매일 아침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책으로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저는 도구일 뿐이고, 작품은 성령께서 쓰신 것”이라며 “저는 사라지고, 오직 성령만이 작품 안에 남기를 바란다”고 고백했다.
“서예도, 감정도 사실은 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건 제 뜻이지만 실행이 되고 열매를 맺는 건 다 하느님의 은총이죠. 제가 그저 제 소명을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