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제도와 법이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원청(주로 하청업체에 업무를 위탁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책임 회피와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하다.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받는 구조 속에서 비정규직과 하청(원청의 주문을 받아 일을 수행하는 업체) 노동자는 더욱 큰 위험에 내몰린다. 보이지 않는 희생 뒤에는 “사람보다 효율이 앞선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달라져야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내년 3월 ‘노란봉투법’ 시행…노·사·정 합의 통한 구체적 시행령 필요
시행 3년 ‘중대재해처벌법’…산업현장 안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
“노동자의 권리, 법 안으로 들어오다”
8월 24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2015년 첫 발의 후 10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를 추가했다.
이로써 원청과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더라도 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 또한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튼 것이다. 또 파업을 벌였던 노동자들의 행위는 불법파업으로 규정돼 손해배상소송 폭탄을 맞았지만, 이제는 기업이나 기관이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단체행동권을 보장했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 통과만으로 의미가 크다. 한국노동연구원 박종식 연구위원은 “노란봉투법 개정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한 대표적 시도”라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 방안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법 통과의 벽은 넘었지만, 현실의 벽은 남았다”
하지만 법보다 행정 지침들이 사실상 더 많이 작용하는 현장에서의 변화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정부가 노·사·정 간 합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조속히 구체적인 시행령과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무법인 사람 대표 박영기(요한 사도) 노무사는 “노란봉투법이 기존 원칙과 충돌할 수 있는 만큼 남은 5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매뉴얼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정부는 누가 약자이고 힘없는 사람인지를 살펴 그 관점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이 47억 원의 손배소에 내몰리자, 시민들이 4만7000원씩 모아 연대의 뜻을 밝힌 작은 봉투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법안은 번번이 폐기되며 10년의 세월을 돌아 통과에 이르렀다. 그 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은 고공에서, 거리에서, 공장 앞에서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냈지만, 남은 것은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죽음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려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됐다면, 산업현장의 안전을 지키려는 또 다른 축은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권리와 안전, 두 과제 모두 노동 현장의 비극을 막기 위한 제도적 시도지만, 여전히 현실과의 간극은 크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로 시행 3년 차를 맞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중대재해처벌법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사고재해자 수는 2018년 9만832명에서 지난해 11만5773명으로 되레 증가했다.
“처벌의 무게가 달라졌다”
물론 유의미한 변화도 있다. 2024년 6월 리튬전지 제조업체 공장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와 관련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대표에게 최근 1심 재판부가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 시행 후 최고 형량이다. 그동안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치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양형 관행이 바뀌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재판부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근본 원인이 이윤 추구에 매몰된 경영자의 인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생산량 맞추기에 급급해 안전에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았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생산 공정을 계속해 피해자들을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게 했다”고 판결했다.
형량이 과거보다 무겁게 작동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곧바로 현장의 안전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노동자를 비용 절감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규직·하청 노동자의 산재율은 원청보다 8배나 높다. 이는 원청이 책임을 피한 채 위험을 하청에 전가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고, 법과 제도의 보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안전 수준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