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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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노동하는 인간’은 존엄하다③] 노동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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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문헌을 통해 사회와 노동 문제를 직접 다룬 것은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1891)가 처음이었다. 이 회칙은 ‘노동 헌장’이라 불릴 만큼, 이후 교회의 사회 교리를 규정짓는 기초가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는 일관되게 노동의 존엄성과 권리를 강조해왔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여전히 낮은 노동 인식에도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이 정신에 따라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노동보다 자본 우위에 두는 가치 왜곡 현실 경계 필요
한국교회, 시대 변화 발맞추며 노동자와 지속 소통·연대



인간은 노동함으로써 하느님과 닮아갑니다


20세기 이후 교황들은 국가와 기업이 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창세기에 드러난 하느님의 창조활동과 인간에게 일하도록 명령하신 것을 노동 존엄성의 근거로 든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통해 창조주의 활동에 참여”(25항 참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의 종류에 따른 중요도는 비록 차이가 있더라도 노동의 존엄성은 노동 자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자인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된다고 전한다.


회칙은 노동조합, 고용주, 국제기구의 책임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한다. 노동자들의 결속은 필수적이며, 노동을 보호하고 힘없는 이들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경제 논리로 회피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또한 자본이 노동보다 우위에 놓이는 현상을 ‘가치 전도의 위협’이라 부르며,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노동의 주체에 대한 사회적 지위 격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그리고 빈곤과 기아 지역의 증가는 이러한 결속이 현실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교회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태도를 분명히 한다. 교회는 이를 자신의 사명이며 봉사요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노동하는 인간」 8항)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에서 “창조 때부터 우리는 노동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며 “가난한 이들이 노동을 통하여 존엄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언제나 커다란 목적이 되어야 한다”(128항)고 강조했다. 「모든 형제들」(2020)에서는 “노동과 노동의 존엄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쁜 빈곤은 없다”(162항)고 단언한다.


이처럼 교회는 노동을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닌 인간 창조성과 존엄의 표현으로 이해하며, 물질주의·경제주의가 노동의 가치를 왜곡하는 현실을 경계한다. 한국사회가 과거보다 노동 여건을 개선해왔음에도, 여전히 경쟁과 효율성 중심의 시각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 문헌의 메시지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노동자와 ‘함께 비를 맞는’ 교회


한국교회는 1960년대 후반 독재정권 시절부터 교회의 사회적 사명 안에서 노동 문제를 주목해왔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각 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의 중심이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묻히지 않도록 함께한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시몬) 신부는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외침이 잊히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에는 이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라 요구한다”고 했다.


노동사목의 연대는 현장에 깊숙이 닿아 있다. 전국의 고공농성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타 종교와 함께 공동기도회를 여는가 하면,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등 관리 소홀과 무관심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유가족과 함께 거리에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교회가 이들에게 구체적이고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몫이다. 그러나 교회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김비오(비오) 신부는 “위원회를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신데, 모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의 연대를 바라신다”고 전했다.


연대의 형태는 다양하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는 전국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해고 노동자와의 만남을 포함한 노동사목 연수를 매년 실시하며, 노동 현실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 상경하는 전국의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인 서울 신길동 ‘꿀잠’이 문을 여는 데도 시민사회 단체와 교회 등 종교계가 함께했다.



끊임없는 ‘새로운 사태’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급증한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교회가 새롭게 응답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노동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비용 절감을 이유로 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나는 노동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 총무 이영훈(알렉산델) 신부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를 ‘부품’으로만 보던 때부터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들이 이제 인간으로서의 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회복해가는 반면,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은 오히려 ‘노동자’라는 보호망에서 배제되고 있다”면서 “더불어 인공지능(AI)와 같은 현대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은 또 다른 ‘새로운 사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사태」가 반포된 지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문제는 여전히 새로운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교회의 시선에서 볼 때 노동 문제는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 아니라, 모든 교회 구성원이 함께 짊어져야 할 삶의 문제이다. 노동은 인간의 부차적 활동이 아니라 삶의 기본 행위다. 그렇기에 일을 하는 모든 이는 노동자이며, 노동의 존엄성이 침해될 위험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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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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