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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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 문제, 왜곡된 인식 개선 필수…“‘노동하는 인간’은 존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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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시행을 앞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비롯해 노동 관련 법률의 제·개정과 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던 ‘노동’ 문제에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과 노동자를 ‘비용 절감’과 ‘효율성’의 잣대로만 바라보는 기업의 경영 문화가 뿌리 깊은 현실에서,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근원은 인식에 있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비단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역시 노동과의 연대를 정치적 사안으로 오해하거나, 노동조합 같은 결속체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노동의 존엄성에 근거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왔지만, 노동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정작 그 주체인 노동자와는 거리를 두는 현실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 총무 이영훈(알렉산델) 신부는 “예수님도 목수로서 노동하셨듯이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이고,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사업에 협력하고 있지만 정작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노동자와 그 가족의 행복과 안녕,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기에 교회가 노동자 입장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저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종호텔, 한화오션,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고, 단 한 번의 대화라도 가능하길 바라며 오늘도 거리에 서 있다.


아리셀 화재 참사와 경부선 열차 작업자 사망사고 등은 노동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인식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그럼에도 유사한 사고는 여전히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뿌리를 1990년대 이후 심화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찾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현실은 노동의 가치마저 계급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움직임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노란봉투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고, 고용노동부는 개정법의 현장 안착을 위한 정책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노동을 비용으로만 계산하고, 노동자를 효율성의 변수로만 취급한다.


교회 전문가들은 교회 구성원의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도 노동 사목 활동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박영기(요한 사도) 노무사는 “교회가 노동 문제를 비롯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면, 많은 신자가 정치적인 일로 받아들인다”면서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하고 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길은 세속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로 숨진 고(故)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비오) 씨는 “해고 노동자나 산재 사망 노동자 유가족의 아픔을 ‘타인의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며 “‘고통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나’라며 함께 슬퍼하고 울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하신 고(故) 유경촌(티모테오) 주교님의 모습처럼 교회의 작은 위로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오늘도 노동 현장은 거칠고 냉혹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군가의 생명,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신앙이 깃들어 있다.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을 되새긴다는 것은 단지 일터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정의를 다시 묻는 일이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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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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