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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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교우촌에 자리한 한옥 성당은 ‘한국의 바실리카’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8.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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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하우현성당’, 유리건판, 1911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한국 성당의 ‘어머니’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성당(聖堂)은 말 그대로 ‘거룩한 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 백성의 집’이다.

“주님께서 친히 당신을 돌에 비겨,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 기초 위에서 교회가 사도들을 통하여 지어졌고, 그 기초 때문에 교회는 견고한 결속력을 지닌다. 그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꾸며진다. 하느님의 집, 곧 하느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하느님의 신령한 거처,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장막, 특히 거룩한 교부들이 찬미하는, 돌로 지은 지성소에서 표상되는 성전이라 불리며, 전례에서는 당연히 거룩한 도읍, 새 예루살렘에 비겨진다. 바로 그 안에 우리는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돌로 쓰인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56)

성당의 근본 목적은 하느님 백성이 모여 ‘오로지’ 그리고 ‘언제나’ 거룩한 ‘전례’만을 거행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성당은 모든 공간이 거룩하지만 그중에서도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제대’가 중심이며, 성찬례를 집전하는 ‘제단’과 미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회중석’으로 구분된다.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가 끝나고 이 땅 위에 세워진 첫 성당이 바로 서울 중림동약현성당이다. 주교좌 명동대성당보다 6년이나 이른 1892년 지어져 이듬해 봉헌된 중림동약현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1839년)·병인(1866년)박해를 거치면서 순교 성인 44위와 복자 27위를 낳은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품고 있는 각별한 곳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3월 8일 성 요셉을 수호성인으로 모신 중림동약현성당을 찾았다. “언덕 위의 성 요셉 성당은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정갈한 품위를 지키며 아랫마을 신자들을 굽어보고 있다. (?) 성당은 고딕식 벽돌 건물이다. 성당 안팎 어디에도 특별히 흥미롭거나 예술적인 장식은 없다. 신자석에 남녀를 격리하는 목제 칸막이가 성당 길이대로 아직 설치되어 있다. 남녀유별은 한국의 오랜 관습이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태동하던 시대에도 이 관습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관습도 변했다. 그러나 칸막이는 한국 교회의 영광된 시대를 추억하는 뜻에서 그냥 남겨 두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32쪽)

중림동약현성당이 한국 성당의 ‘어머니’라고 하면, 1898년 봉헌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한국 성당의 ‘머리’이다. 베버 총아빠스는 명동대성당의 첫인상을 “고딕 양식으로 높이 솟은 주교좌 성당에는 십자가가 하늘 높이 달려 도시를 비추고 있다. 십자가는 만백성을 빛으로 인도하는 이정표다”라는 짧은 글로 표현했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성당’, 유리건판, 1911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하늘과 땅이 만나는 거룩한 하느님의 지성소

박해 이후 깊은 산 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에 자리한 교우촌 중심에 기와와 초가로 지어진 한옥 성당들은 ‘한국의 바실리카’였다. 과장된 표현일 수 있고, 물리적 공간으로도 ‘대성전(바실리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협소하지만 박해 후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전례 공간으로서 쓰임새는 한치의 다름이 없다.

한국의 바실리카들은 유럽의 대성전들과 마찬가지로 강당식 직사각형 평면에, 가운데 너른 공간을 기준으로 좌·우측으로 길게 늘어선 기둥들을 따라 복도(측랑)가 있었다. 돌이 아닌 흙으로 지은 성당이지만 순교를 각오하고 박해를 이겨낸 교우촌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심은 이 세상 모든 바실리카를 채우고도 남았다.

베버 총아빠스가 처음 대면한 한국의 바실리카가 ‘하우현성당’이다.<사진 1> 그는 이 교우촌에 매료돼 신자들은 물론 마을 구석구석을 사진에 담았다. “성당은 초가지붕에 막돌과 진흙으로 궁색하게 벽을 쌓은 나지막한 토담집이었다. 우리는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좁고 초라했다. 천장에는 생나무 들보가 튀어나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울퉁불퉁한 기둥이 들보를 바치고 있었다. 장식이라곤 낡은 양탄자로 제대 네 면을 두른 것이 전부였다. 문과 창문들은 가느다란 나무 격자로 되어 있었다. 문과 창문의 격자 위에 바른 창호지에 석양이 비치었다. 전면에 있는 제대 옆 창문 두 개는 붉은 색유리였다. 색유리를 통해 신비스러운 빛이 장엄한 어스름 속으로 들어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193쪽)

하우현성당에 이어 방문한 곳이 ‘갓등이성당’이다.<사진 2> 1839년 기해박해 이전부터 자리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아직 옹기를 구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신자들을 보고 목멘 베버 총아빠스는 갓등이를 ‘박해의 유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곳 신자들의 영웅적 삶을 칭송했다.

성당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이고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지성소다. 이 거룩한 공간에 들어선 인간은 온 마음과 온 정성으로 하느님께 기쁨에 찬 흠숭례를 드린다.
<사진 3> ‘팔도구성당 종탑’, 유리건판, 1925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성당, 신앙으로 목숨 지탱하던 삶의 자리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당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이자 가톨릭 지성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문을 지나면서 장터와 분별된 조용하고 축성된 내부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는 성소(聖所)이다. (?) 이 안에 속하지 않는 것은 생각·소원·근심·호기심·허영할 것 없이 모두 밖에 놓아두고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 성당이 이루는 공간은 하느님만을 위해 선정되어 있다. 하느님만을 위해 이룩되고 성화되어 있다. 곧게 솟은 기둥·넓고 튼튼한 벽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으로 ‘그렇지. 여기가 하느님 계시는 집이지’ 하고 따로 느끼게 된다.”(「거룩한 표징」 40~41쪽, 장익 주교 옮김, 분도출판사)

성 베네딕도회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사목하던 두만강 너머 북간도 지역을 1920년부터 관할하게 됐다. 북만주 지역에서 용정 ‘팔도구’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간도 지역 가톨릭 신자 80가 팔도구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심 깊은 교우촌인 이곳은 베네딕도회가 사목을 관할할 당시 일본 총독부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관동군 그리고 마적단으로부터 갖은 약탈을 당했다. 특히 마적단의 횡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저녁에 뮈텔 주교로부터 최문식 베드로 신부가 풀려났다는 긴급 전갈이 왔다. 최 베드로 신부는 한국인이 다수 이주해 간 남만주 북간도(팔도구)에서 사목하다가 반년 전쯤 중국 마적단에게 인질로 잡혀갔다. 그동안 노예처럼 학대당하고 삶과 죽음을 오갔다고 한다. 마적은 마을을 약탈하고 성당과 부속 건물을 파괴했다. 2만 엔에 달하는 몸값을 요구했으나, 신자들이 모금한 4000엔 선에서 석방이 이루어졌다.”(백동 수도원 연대기, 1920년 2월 20일 자)

마적단은 수시로 팔도구 신자들을 납치해 돈을 요구했다.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팔도구 신자들이 더 안전하게 생활하고 신앙으로 뭉칠 수 있도록 성당을 보수했다. 마적들이 최문식 신부를 납치하면서 성당을 폐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강암으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았다. 일곱 기둥으로 내부 공간을 나눴다. 벽에 회칠해 깔끔하게 단장하고 보라색 천에 중국식으로 금색 글자를 새겨 성당을 장식했다. 종탑 수리도 했다. 종탑 목조 지붕이 썩어 빗물이 제의실에 떨어졌다. 팔도구 신자들의 10년 숙원사업이었던 종탑이 1925년 11월 초 35m 높이로 우뚝 섰다.<사진 3>

1931년 11월 4일 팔도구에 새 성당이 봉헌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성당이 완공되자 마적단이 쳐들어와 함석 지붕을 훔쳐가더니 나중에는 성당을 깡그리 불태웠다. 이처럼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종식 이후 일제 강점 시기까지 한국의 성당은 가난한 신자들의 은둔처였을 뿐 아니라 신앙으로 목숨을 지탱하던 삶의 자리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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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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