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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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목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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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인생의 말년 약 2년간, 서울을 떠나 대전교구로 교적을 옮기셨었다. 병원과 간병 문제였다. 형제들과 의논 후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는 당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치르기로 했고, 아버지도 임종 전 이 소식에 기뻐하셨다.


그런데 막상 서울의 한 가톨릭계 병원에 빈소를 마련하니, 장례미사가 문제였다. 대전에서 신부님이 오실 사정이 안 되었고, 이전 본당의 신부님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셨기 때문이었다. 가톨릭계 병원이니, 원목 사제가 두세 분 계시다는걸 알고 사무실로 가서 미사를 부탁드렸다. 아버지의 장지가 충북으로 정해졌고,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이른 시간에 미사를 마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사무실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미사 신청을 하려니까 장례미사가 오전 10시 반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거였다. 원목 신부님들께서 그 시간에 출근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차가 떠날 때, 서울의 교통 체증도 피해야 하고, 장지가 멀고’ 등의 사정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망연해 있는 내게 사무처 직원이 말했다 “오후에 장례미사를 봉헌하시고, 하루 더 주무시든지 아니면 장례 전날 오후에 하세요."


내가 “이 병원 사정 때문에 입관이 내일 저녁인데, 그럼 입관도 안 하고 장례미사를 하라는 건가요? 게다가 미사 때문에 하루를 더 보내라구요?“ 하자 사무처 직원은 “할 수 없죠. 입관 없이 그냥 하세요. 미사가 중요하잖아요”라고 했다.


한번 보내드릴 아버지의, 그들 말마따나 중요한 장례미사를 그런 식으로 할 단 하나의 이유는, ‘신부님들이 그때 출근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을 당한 자식의 입장에서 효과는 좀 있었다. 눈물이 쏙 들어가고 속이 부글거리면서 슬픔이 많이 가시는 그런….


하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실(?) 신부님을 수소문해서 겨우 모셨다. 다행이었다. 일찍 미사 주례해 주실 신부님이 계셔서…. (막상 당일 새벽 평소 존경하던 신부님 세 분이 더 와주셨다.) 


그렇게 결정하고 겨우 맘을 추스르며 앉았는데, 존경하던 신부님 중 한 분이 빗속에서 찾아오셨다. 뜻밖이어서 정말 반갑고 감사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지리산에 있다고 하자, 사정을 물으셨다. 


나는 시골 작은 본당에서 숨어있는 보석들과도 같은 신부님들을 만나는 기쁨을 말씀드렸다. ‘솔직히 서울에서 교적 신자 2만 명의 본당에 다니다가, 200명 남짓의 시골, 게다가 거의 노인들뿐인 성당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그 놀라움과 경외는 매우 컸다’라고. 


”본당 신부님이 어찌나 훌륭하신지, 주일미사 강론 때는 감동이 되어 눈물까지 흘려요. 신자가 별로 없으니 부끄러워 눈물을 참느라고 애쓰죠. 신자 스무 명도 안 나오는 매일 미사 강론까지 너무나 좋아요. 멀리서도 그분을 지켜주십사 꼭 기도하거든요.“ 


듣던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난 이런 소리 처음 들어. 신자가 이토록 본당 신부를 칭찬하는 소리!” 내가 대답했다. “저도 처음 해봐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배웅해 드리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하자, 신부님은 무심히 대답하셨다. “우리 하는 일이 원래 이런 거야.” 왜 그때 그 말이 그리도 울컥했는지. 목자란 무엇이고 또 누구일까.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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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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