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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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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수요일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기린다. 역사상 가장 많은 해외 사목을 다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에도 방문한 바 있어 우리에게 친숙하다. 정교회 지도자·이슬람 학자들과도 교류했고 직접 사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1981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튀르키예의 극우 정치 조직 회색늑대단의 메흐메트 알리 아으자가 교황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다. 암살 시도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교황이 병원에서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퇴원하자마자 범인을 찾아 손을 잡고 용서한 것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새해 첫 미사에서는 가톨릭 교회가 지난 2000년 동안 방조하거나 조장해 온 각종 범죄에 대해 시인과 반성을 언급하여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폴란드 태생으로 원래 이름은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ózef Wojtyła)이며 최초의 슬라브권 출신 교황이다. 하드리아노 6세부터 무려 455년 동안 이탈리아인들이 교황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소련 연합을 붕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79년 성 스타니슬라오 순교 기념일을 위한 폴란드 방문은 거대한 민중봉기를 이끌어낸다.

폴란드의 친소 정권은 하필 폭군에 저항하다 순교한 성 스타니슬라오의 기념일에 교황이 방문하는 것을 우려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9일 동안 폴란드 전역을 누비며 “신념을 잃지 말라, 패배하지 말라, 용기를 잃지 말라”라고 강조했고, 이는 폴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9일의 여행’이라고 이름 지어진다. 당시 폴란드 친소 정권의 체제 붕괴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노동위원장 바웬사,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역할이 두드러졌으며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폴란드가 자유화된 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모국에 다시 방문했는데, 당시 폴란드 정부는 교황이 방문하기 한 달 전부터 주류 판매를 금지했을 정도다. 이후 폴란드에서 중요한 인물의 방문이나 사망 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일반화되기도 했다.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등 96명이 사망한 러시아 스몰렌스크 참사에 대한 추도식 때도 주류 판매가 제한되었다. 근래 폴란드를 방문하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성상이 무수히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교황이 이런 현상을 보셨다면 정중하게 거부하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교황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고 작곡가 펜데레츠키와는 오랜 친구로 관계를 맺어왔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교황 앞에서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연주했고, 스스로 그가 한 ‘가장 훌륭한 봉헌’이라고 말했다.

//www.youtube.com/watch?v=9YnGFL7wios

펜데레츠키는 교황이 서거한 후 그를 위해 짧고 애절한 작품을 헌정했다. 느리고 장중한 샤콘느의 리듬에 슬픔이 가득한 멜로디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보내는 폴란드인들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있다.

//youtu.be/dDXLDFNkYH8?si=1OsE0zKqaoKH9mF1




류재준 음악감독
















작곡가 류재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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