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가 올해로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았다. 수도승이자 선교사로 이 땅에 파견된 수도자들은 온갖 고난과 박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해 왔다. 수녀회는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의 위협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배 수도자들의 믿음과 열정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한국 진출 100년을 살펴본다.
복음의 씨앗, 원산에서 싹트다
독일 베네딕도회 수도자 안드레아스 암라인(P. Andreas Amrhein·1844~1927) 신부는 사부 성 베네딕토의 수도 정신에 자신의 선교 이념을 접목시켜 1885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를 창립했다. 그로부터 40년 뒤인 1925년 11월 21일, 네 명의 독일 선교사가 한국에 파견됐다.
수녀회는 함경남도 원산에 자리를 잡고 한국인 수녀들을 양성하며 학교를 세우고 자선 사업을 펼쳤다. 처음에는 지역민에게 환영과 수모를 동시에 받았지만, 오직 선교 정신으로 묵묵히 활동을 이어갔다. 1927년에는 원산 수녀원이 원장좌 수녀원(프리오랏·Priorat)으로 승격됐다.
박해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믿음의 불씨
그러나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들어선 공산정권은 수녀들의 생명까지 위협했다. 1949년 원산 수녀원이 강제로 폐쇄되고, 수도자들은 수용소로 끌려가 중노동과 추위, 질병, 굶주림 속에서 목숨을 잃거나 피살됐다. 약 4년 6개월 동안 옥사덕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이들 가운데 한국인 장 아가타 헌신자와 박빈숙(루치아) 수녀, 독일인 프룩투오사 수녀와 에바 슈츠 수녀가 순교했다. 이들은 2007년 ‘베네딕도회 덕원의 순교자 38위’에 포함돼 현재 시복 심사가 진행 중이다.
수녀회 대구 수녀원 원장 이일경(베타니아) 수녀는 “전쟁 이후 본국으로 송환된 독일 선교사 대부분이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고통의 땅,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선교 활동에 힘썼다”며 “암흑 같은 시대 속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배 수도자들의 얼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 세운 새 둥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수녀들은 서원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향했다. 피란길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새로운 둥지를 틀기 위해 고군분투한 수녀들은 당시 대구대목구장 최덕홍(요한) 주교의 배려로 대구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수녀회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과 청소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사도직에 헌신했다.
1952년 대구 공평동에 첫 분원을 설립한 수녀들은 분원 옆에 성 안토니오의원을 개원하면서 전쟁의 여파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의료 사업을 시작했다. 1956년 신암동에 마련한 본원은 원장좌 수녀원으로 승격됐으며, 이곳에서 파티마의원과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며 사랑의 돌봄을 이어갔다.
1985년, 현재의 대구 사수동 수녀원을 새 본원으로 축성할 당시 회원 수는 300여 명. 수녀회는 이후 논의를 거쳐 1987년 서울에 새 원장좌 수녀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수녀회는 각 교구와 본당의 선교 사도직 외에도 성경학교를 개설하고 유치원과 중고등학교를 통해 교육 사도직에 힘쓰고 있다. 또 의료와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시대의 또 다른 취약층인 청년들을 돌보고 응원하기 위해 대구 경북대학교 인근에 ‘청년밥상 베네’를 열었다.
100주년, 한 그루터기 두 공동체의 감사와 축하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와 서울 수녀원은 ‘따로 또 함께’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한다. 한 그루터기의 두 공동체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신자들과 함께 감사하고 축하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100년 전 한국에 첫발을 디딘 날인 11월 21일에는 오후 2시 대구 수녀원 본원 성당에서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또 11월 29일 오후 2시에는 서울 수녀원 본원 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 기념미사가 열린다.
이에 앞서 11월 1일에는 대구대교구 주교좌범어대성당 드망즈홀에서 ‘이 땅으로의 초대, 그 부르심의 힘으로’ 주제로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오전에는 김정숙(소화 데레사) 영남대 명예교수가 ‘툿찡의 수녀들, 조선을 품다 ? 치유, 교육, 영성’에 대해, 이현미(보나벤투라) 수녀가 ‘인간의 노래, 하느님의 서사’,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허성석(로무알도) 신부가 ‘베네딕도회의 비전’을 주제로 발제한다. 오후에는 봉헌회 창립 20주년 감사 음악회가 이어진다.
이일경 수녀는 “기념행사는 100년 역사에 숨겨진 보화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다시 힘을 얻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약해야 하는 현재의 우리를 재조명하기 위함”이라며 “특히 사선을 넘어 신앙과 서원의 삶을 지켜낸 우리 선배님들의 영웅적인 삶은 언제나 회자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수녀는 심포지엄에 대해 “선배 수녀님들 안에서 발견한 영성을 조명하면서 우리 안에 숨죽이고 있는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기를 갈망하는 오늘의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