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크로 몬테 디 바레세의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모 성지.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성모 성지다. 바레세 성산(聖山)은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의 다른 여덟 곳의 성산과 함께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0월은 묵주 기도 성월로 지냅니다. 우리 교회가 역사 속에서 체험한 기도의 힘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이지요. 그 기원은 1571년 10월 비오 5세 교황이 오스만 제국의 위협 속에 모든 신자에게 묵주 기도를 청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연합 함대가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교황은 성모님의 전구에 감사하며 ‘묵주 기도의 성모 축일’을 제정했지요. 그 후 묵주 기도는 구원의 신비를 손끝으로 기억하며 세상과 하느님을 잇는 은총의 수단이었습니다.
묵주 기도는 세기를 거듭하며 신앙의 예술로도 꽃피었습니다. 유럽 곳곳에 묵주 기도의 신비를 자연 속에 새긴 장소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오늘 소개할 성지인 이탈리아 북부 사크로 몬테 디 바레세와 그 정상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모 성지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당. 사크로 몬테 조성 시 세 개의 내진을 가진 구조로 증개축하며 바로크 양식으로 재단장했다. 주 제대의 성모상은 14세기 캄피오네 유파의 작품이지만, 1662년 조각가 주세페 루스나티가 영광의 신비 제5단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시는 성모님을 주제로 주 제대를 새롭게 만들었다. 제대 위 천장화는 살바토레 비안키의 손길로 완성됐다.
롬바르디아 바레세의 사크로 몬테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 지역에 로마나 예루살렘 같은 성지를 직접 순례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곱 ‘성산(Sacro Monte, 聖山)’이 조성됩니다. 사크로 몬테 디 바레세, 즉 ‘바레세의 성산’도 그중 하나로 17세기 밀라노대교구가 바레세 인근에 조성한 성모 성지입니다. 입구부터 정상까지 묵주기도의 신비를 상징하는 14개 소성당과 정상의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모 성지로 이뤄져 있지요.
10월의 아침, 기차가 밀라노를 벗어나면 안개 덮인 롬바르디아 평원이 펼쳐집니다. 기차는 포강 유역의 산업도시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달립니다. 저 멀리 알프스 능선이 희미하게 보이고, 눈 덮인 몬테 로사의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장밋빛으로 빛납니다.
바레세역에 내리면 공기가 다릅니다. ‘일곱 언덕의 도시’라 불릴 만큼 지형이 들쑥날쑥합니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산줄기 위로 사크로몬테와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지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시내버스는 굽이진 산허리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데요, 창밖으로 보이는 바레세 호수 풍경이 멋있습니다. 아주 맑은 날이면 그 너머 지평선 위로 밀라노의 스카이라인이 아른거리지요. 약 30분쯤 달리면 성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묵주 기도의 길’의 성 암브로시오 아치(왼쪽)와 성모 승천을 주제로 한 제13 소성당(오른쪽). 묵주 기도의 길과 소성당은 1604년 착공되어 1698년에 완공됐다. 카푸친회의 조반니 바티스타 아구아기아리 신부가 ‘묵주 기도의 언덕’을 처음 구상했고, 건축가 베르나스코네가 건축과 조각·자연의 리듬을 계산해 각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현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으로 피어난 기도 언덕
주차장을 지나 보이는 아치문을 들어서면 자갈로 포장된 길인 ‘묵주 기도의 길’이 시작됩니다. 정상까지 2㎞ 남짓한 오르막길을 따라 14개의 소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각 소성당은 묵주 기도 환희의 신비·고통의 신비·영광의 신비를 상징합니다. 소성당마다 ‘수태고지’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길’ ‘부활과 성모 승천’ 등을 형상화한 테라코타 상과 프레스코화 벽화가 순례자에게 그 신비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사크로 몬테 디 바레세가 탄생한 시대는 가톨릭 쇄신의 격동기였습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교에 맞서 교회 개혁의 방향을 정립하며 ‘이미지를 통한 교리교육’을 강조했습니다. 교회는 평신도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회화·조각·건축의 언어로 신앙의 진리를 설명하도록 했지요. 사목 현장에서 이를 잘 구현한 인물이 밀라노대교구장 성 가롤로 보로메오(1538~1584) 추기경이었습니다. 그는 신학교를 세우고, 교리교육·전례 개혁을 주도하며 바레세 성산을 비롯해 교구 안에 여러 성산을 조성했습니다.
밀라노 교회는 초대 교부 성 암브로시오의 도시로, 서방 교회 안에서도 독자적 전례와 신학 전통을 지닌 교회입니다. 성 보로메오 추기경은 이 ‘암브로시오 전통’을 바탕으로 신학·예술·교육이 하나로 엮인 사목적 르네상스를 일으키며 근대 교회 개혁의 모범으로 발전시킨 것이죠.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로마 교회가 세운 표준을 실제 생활 속 신앙으로 구현한 겁니다.
묵주 기도의 길은 꼬불꼬불 숲을 지나는 오르막길이지만 곳곳에 쉼터가 있어서 힘들진 않습니다. 소성당마다 한 장의 교리서요, 내딛는 걸음마다 한마디의 기도입니다. 묵주 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를 돌리다 보면 서서히 정상에 다다릅니다.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당. 922년 문서에 '벨라테 위의 성모 성당'으로 소개됐다. 현재 성당은 12세기 지어진 성당 위로 1472년에 재건했으며, 17세기에 사크로 몬테의 제15번째 장소가 됐다. 15세기 말 이곳에서 설립된 암브로시오 은수수녀회가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성당 왼편의 복자 소성당. 15세기 후반 이곳에서 성 암브로시오의 영성에 따라 은수생활을 하며 암브로시오 수녀회를 창립한 복녀 가타리나와 줄리아나의 성해가 모셔져 있다.
성 암브로시오 신앙이 숨 쉬는 산타 마리아 델 몬테 성지
정상부의 산타 마리아 델 몬테는 오래된 성모 성당·암브로시오회 수녀원·박물관 등으로 이뤄진 성지 마을로 바레세 사크레 몬테의 정점이자 롬바르디아 신앙의 상징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4세기 밀라노 대주교 성 암브로시오가 아리우스파 이단에 맞서 거둔 승리를 기념해 이곳에 소성당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지하 소성당의 5세기경 바닥 유적과 벽화,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복원된 흔적은 이곳이 중세를 거슬러 올라가 초대 교회까지 이어진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성모 성당의 현재 모습은 12세기의 소성당 위로 1472년에 재건한 것입니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성당 안은 바로크 양식의 장식으로 화려합니다. 성당은 묵주 기도의 신비로운 장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 제대는 영광의 신비 제5단의 천상 모후관을 쓰시는 성모님을 주제로 단장되어 있고, 천장에는 하늘로 올려지는 성모와 그 주위를 에워싼 천사들이 그려져 있어, 성산의 오르막길 전체를 이 한 장면으로 종결짓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3년 10월을 묵주 기도 성월로 지낼 것을 선포하며 묵주를 우리 교회를 하나로 묶는 사랑의 끈이며, 하느님 자비와 이어주는 은총의 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묵주 기도의 마지막 알을 쥐며 오른 이곳에서 어둠이 짙게 깔린 지금 우리가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해봅니다.
<순례 팁>
※ 바레세-밀라노는 50㎞ 거리. 밀라노 카도르나역에서 출발할 것. 바레세역에서 성산 입구 주차장(정류장 : Piazzale Pogliaghi)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 후 도보 이동. 정상까지 협궤 케이블카인 푸니쿨라도 있다.
※ 산타 마리아 델 몬테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07:30·09:00·11:00·16:30, 평일 08:00·16:45. 수도원 인근에 호텔·레스토랑 등이 있다.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