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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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과 이명동음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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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 화요일 미사는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을 기념한다. 유다의 축일이 있다는 것에 놀라는 분들이 있는데, 배신자 유다와 다른 분이다. 성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며 유다 지역에서 선교하였다. 영어로도 유다 이스카리옷은 Judas, 유다 타대오는 St. Jude 혹은 Thaddeus로 표기해 혼동을 방지하고 있다.

동명이인으로 곤란을 겪는 것은 고금이 같다. 지금 저장되어 있는 휴대전화 주소록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인지 살펴보면 알게 된다. 표의문자인 한자로 구별하면 좀 줄어들겠지만, 불행히도 알파벳과 한글은 전부 표음문자다. 동명이인은 나라별로 다른 잣대로 구분되기도 한다. 한국은 법적으로 한자가 다르더라도 한글이 같으면 동명이인으로 취급되지만, 일본은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읽는 방법인 독법이 같은 경우가 있어 한자표기도 동일한 경우에만 동명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인의 이름을 자녀에게 지어주어 후광을 얻으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유명했다가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경우 같은 이름인 것을 꺼리게 된 사례도 있다. 아돌프라는 독일식 이름은 ‘고귀한 늑대’라는 뜻으로 20세기 초까지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유럽인들의 늑대에 대한 환상은 한국인들의 곰 설화에 필적할 만하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에 의해 양육되었다고 알려지며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 「정글북」의 키플링은 늑대를 원초적인 존재로 묘사하였다. 노르드 신화에서 거대한 늑대인 ‘펜리르’는 신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 이후 이 이름을 쓰는 이가 급격하게 줄었다. 한국에서 김일성·원균 같은 이름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음악에서는 이명동음이라는 것이 있다. 표기된 것은 다르나 같은 음을 내는 기보를 뜻하는데 급격한 조성 변화를 꾀할 때 많이 쓰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다장조의 3음인 미와 내림 파는 기보는 다르지만 같은 음인 것이다. 보통 조성을 바꿀 때 작곡가들은 동일음·딸림음·버금딸림음 순서로 조성 이동하기를 즐긴다.

이것을 전조라고 한다. 전조는 음악에 색을 입히고 윤택하게 한다. 같은 조성으로 지속되면 피할 수 없는 따분함과 지루함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작곡기법이다. 그런데 이명동음을 통한 전조는 급격하고 미묘하다. 급격한 것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방향으로 전조가 되기 때문에 느끼는 당혹감이고, 미묘한 것은 인지하기도 전에 자리를 바꾸는 은밀함이다.

20세기 초반의 걸작인 아놀드 쉔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이 이명동음 전조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온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은근하면서 밀도 있는 스토리를 유지하게 되며, 쉔베르크가 이 작품의 베이스로 삼았던 시의 다이내믹한 진행을 따라갈 수 있게 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성품을 보여주는 사람들처럼 이 미묘하고 급박한 전조의 묘미를 느껴보면 좋겠다.

아놀드 쉔베르크 정화된 밤

//youtu.be/L3vclwWOefM?si=u2e05F1bGzscsHW3





작곡가 류재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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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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