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서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커피를 즐기는 연령층이 낮아졌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커피)라는 말이 생길 만큼 겨울에도 아이스 커피를 들고 다닐 정도다. 커피가 주는 각성(覺醒) 효과를 알게 된 학생들에게 커피나무 열매는 아담이 따먹은 선악과처럼 현대의 또 다른 선악과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커피 사랑은 더 대단하다. 글로벌 시장조사 회사 유로모니터가 밝힌 2024년 기준 아시아 태평양 지역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한국이 416컵으로 압도적인 1위였으며, 싱가포르 290컵, 일본 281컵, 홍콩이 276컵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과연 커피는 왜 이토록 사람들을 매혹시킬까? 정답은 바로 커피 속 카페인이다. 카페인(CHNO) 한 분자는 탄소 8개, 수소 10개, 질소 4개, 산소 2개로 이뤄진 식물성 활성 물질이다. 일상생활 시 뇌에서는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뇌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면 피로감과 수면을 유발한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구조가 비슷하여 아데노신 대신에 뇌 수용체에 결합하면 중추·말초신경에 모두 흥분제로 작용해 각성효과를 내며 주의 집중을 돕는다.
또 카페인은 스트레스에 저항하게 하는 호르몬인 코티솔과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는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 분비에도 관여한다. 카페인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건의에 의해 1821년 독일의 화학자 룽게(F.F.Runge)가 커피 원두에서 최초로 추출하였다. ‘커피 러버’인 괴테는 룽게에게 그리스산 커피콩을 건네며 왜 커피가 사람들을 깨어있게 하는지 분석을 요청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커피에 열광했는데,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정치·경제·문화에 대해 토론했으며 바흐는 일명 ‘커피 칸타타’라고도 불리는 음악을 통해 커피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표현하기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하루에 50잔 가까이 커피를 마시며 많은 작품을 썼다고 전해지며,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 역시 초콜릿을 넣은 커피를 하루에 30잔 이상 마셨다 한다. 하지만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의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카페인은 수면을 유도하는 아네노신 자체는 없애주지 못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몸은 계속 피로해지며 이뇨작용으로 신장 기능에 부담을 준다.
또 커피는 pH4~7 범위를 가진 약산성이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하여 위염을 일으킬 수 있고 장기간 과다 섭취 시 심장 떨림, 불면증, 신경과민, 골다공증 등의 신체적·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문득 내 앞에 놓인 커피 가득한 텀블러를 보며 생각해본다.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주유소에서 비어가는 자동차 연료통에 기름을 넣듯이 활력이 고갈되어 가는 뇌에 카페인을 주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쁘고 복잡한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카페인으로 버티는 뇌의 각성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자아를 찾고 회복하기 위한 영적 각성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힘을 내십시오.”(1코린 16,13)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