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10월 9일 1단계 휴전 합의에 이르렀고, 10월 10일 휴전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정한 숨 고르기일 뿐 전쟁과 고통의 시간을 끝내는 평화의 약속은 아니었다. 실제로 휴전 발표 며칠 뒤 다시 공습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 가자지구의 참혹한 현실에 무뎌진 우리를 깨운 한 사람이 있었다. 봉쇄된 바다를 향해 항해한 평화활동가 해초(김아현)다. 해초와 동료들은 굶주림과 폭격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구호품을 전하기 위해 작은 배를 띄웠다. 해초 역시 항해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일보다 더 큰 고통이 그곳에 있다”고 믿었기에 배 위에 올랐고, 결국 이스라엘군에 나포되어 감금과 폭력을 겪은 뒤 추방당했다.
하지만 가자의 고통에 오랫동안 무심했던 한국 사회는 해초의 항해 역시 이 여정의 의미보다는 위험을 감수한 개인의 ‘무모함’에 초점을 맞췄다. 언론은 ‘한국인 나포’라는 제목으로 그의 용기를 가두었고, 정부는 여권법 위반 여부에 따른 처벌 가능성을 언급했다. “누군가의 일상에 팔레스타인이 들어오길 바라서” 떠났다는 해초의 목소리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한편 지난 10월 21일 일산 킨텍스에서는 2025 ADEX가 열렸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기업과 정부 관계자가 모여 ‘첨단 방산 기술’을 자랑했고, 수출 성과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무대 반대편에서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을 향해 항의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가담한 방산 기업들이 전시회에 참가하도록 허용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은 손바닥에 ‘STOP GENOCIDE’, 팔에는 가자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 피로 얼룩진 것처럼 보이는 붉은 손들이 일제히 들렸을 때, “전쟁은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플래카드의 문구는 언제나 전쟁을 먹고 자라는 무기 산업의 현실을 고발했다. ‘K-방산 르네상스’를 자랑스럽게 말할 때, 그렇게 수출된 무기들은 어디에서 누구의 생명을 끊고 있을까?
그리스도인은 폭력의 이익을 거부하고, 인간 생명을 지키는 편에 서는 사람들이다. 해초의 항해, 붉은 손의 시위,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폭력적 저항은 모두 생명을 살리고자 폭력에 맞서는 선택이기에,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고 가신 평화의 가르침과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힘으로 유지되는 질서도, 두려움을 눌러 얻은 침묵도 아니다.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연약해 보이지만, 두려움보다 사랑을 믿는 이들로 인해, 가장 약한 자리에서 시작되는 평화다.
해초의 항해와 붉은 손의 퍼포먼스는 그 평화의 씨앗들이다. 때로는 무력해 보이지만, 그 용기는 ‘힘이 평화를 지킨다’는 세상의 믿음에 작지만 깊은 균열을 낸다. 휴전이 진짜 평화가 되려면, 세상의 평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우리 각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정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