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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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세례 받던 그날의 다짐

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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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외가 쪽은 친척 중 주교품을 받은 분이 나오실 만큼 신앙심이 깊은 집안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누구도 내게 성당에 가자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사찰을 다녔고, 결혼 후에도 아이들 손을 잡고 가족과 함께 매주 일요일이면 법회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아내,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 아들 이렇게 네 식구 모두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다.

결혼과 함께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휴일도 없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생활해야 했다. 아내는 늘 혼자 지낼 수밖에 없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위를 받은 후에는 주중은 대전에서, 주말은 인천에서 생활하는 주말부부의 생활이 시작됐다. 주중에는 집안일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가정에 소홀해지면서 아내와의 다툼도 잦아졌다. 냉랭한 부부관계가 지속됐고 아내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심하게 다툼이 있었고, 홧김에 집을 나와 2박 3일을 아내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냥 거리를 방황했고, 밤이 되면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향한 곳이 인천교구 답동주교좌성당이었다. 성당 앞 벤치에 앉아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성당에서 두 번의 밤을 보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성당 마당에서 보낸 두 번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됐다. 여전히 성당 앞 벤치에 앉아있던 나에게 한 어르신이 커피를 들고 오셨다. “어제 아침에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커피 한 잔 하세요.” 나는 그분께 “고해성사를 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물었고, 그분은 나에게 고해성사를 위한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난 아내에게 2박 3일간의 나의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사과했고, 잘못은 내가 했지만 나를 위해 함께 세례를 받아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아내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고, 우리 가족 모두 같은 날 세례를 받았다.

교리교육 기간은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다짐의 시간이었다. 드디어 세례를 받은 그날, 성체 성혈을 받아모시고 자리에 앉는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동안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가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나의 잘못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동시에 주님께서 그런 나를 용서해주시리라는 믿음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고, 아내와 가정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깊이 다짐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흐느껴 울면서 오직 “감사합니다”는 말만 되뇌었다. 용서와 위로와 희망을 동시에 받는 느낌이었다.

취준생들은 한결같이 “취업만 시켜주시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취업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간절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태함과 타성에 젖어든다. 세례받던 그날, 가슴 속에 가득했던 뜨거움과 감사,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이 이제는 사라진 듯하다. 그런 걸 느낄 때면 내가 세례받던 15년 전의 그날을 떠올린다.

“이 힘겨움을 지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주님의 충실한 일꾼으로 주님을 따르며 주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세례를 받던 그날의 다짐을 잘 지키고 있는가?

 

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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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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