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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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0. 위령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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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북간도 팔도구 성당 천주교 묘지 십자가,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부활의 희망 살며 선한 죽음(善終) 준비

“고통 없이 영광 없고, 죽음 없이 부활 없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이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죽음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완전한 새 인간으로 태어났다. 죄를 끊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됐다.(에페 4―5장 참조)

이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하려고 죽는 것이 나에게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라고 고백했다.<사진 1>

그리스도인은 항상 죽을 때를 위해 준비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죽음을 잘 맞을 수(선종-善終) 있도록 기도한다. 먼저 주모경과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성모님께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하며, 삼종기도 때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저녁때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며 통회 기도를 바치고 선한 죽음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임을 잘 안다. 주님께서 당신 죽음과 부활로 온 인류에게 천국 곧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된 자’가 되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이미 세상을 초월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특히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대로 은총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아 ‘연옥’에 머물면서 영원한 구원을 위한 마지막 정화를 거치는 영혼들을 기억한다. 연옥 영혼들은 하느님을 거슬러 현세와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자(마태 12,32 참조)들이 받는 영원한 지옥 벌과 달리 정화를 거친 후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교회는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참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기도와 자선, 대사와 보속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교회의 권고를 주저하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사진 2> 팔도구 최 마티아 가족의 위령 기도,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3> 칼리스토 히머(?), 용정성당 천주교 묘지 이 소피아 무덤, 유리건판, 1925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효는 한국인 민족혼 형성하는 한 요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한국 사진 아카이브에는 교우들이 천주교 묘역에서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해 위령 기도를 바치는 사진이 다수 있다. 그중 한 장이 1924년 이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만주 팔도구 천주교 묘역 연도 사진이다.<사진 2> 사진은 최 마티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가족들이 무덤 앞에서 위령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복을 입은 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가족과 친지들이 아마도 죽은 이의 기일이나 추석 명절에 묘소를 찾아 기도하고 있는 듯하다.

앞줄 어른들이 모두 묵주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령 기도에 이어 묵주기도를 바치는 중인 모양이다. 가족들의 모습은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기백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이러하다. 어떤 시련과 고난·슬픔이 닥쳐도 하느님과 함께하기에 이겨낼 수 있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생명의 종교’다. 사람들을 죄의 올무에 씌워 옴짝달싹 못 하게 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이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 한국인의 민족혼을 형성하는 한 요소라고 극찬했다. “선교사들이 이 민족과 어우러져 살면서, 그리스도교와 그 교리에 합치하는 한 모든 관습을 용인할 뿐 아니라, 신자들에게 장려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흐뭇한 감동을 준다. (?) 선교사들은 부모 공경에서 비롯되는 옛 관습을 지켜 줌으로써, 효의 종교적 가치뿐 아니라 탁월한 민족적 역량까지 보존했다. 부모에 대한 효도야말로 위대하고 고귀한 한국인의 민족혼을 형성하는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00쪽)

1925년 북간도 연변 용정본당 천주교 묘지 사진이다. 사진 속 무덤의 주인은 이 소피아다. 그는 1925년 음력 11월 25일에 선종했다. 언 땅을 파서 조성해서인지 봉분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슬픔을 더해준다. 무덤 주인의 신상이 담긴 나무 십자가 가로축에는 “망자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아멘”이라 적혀 있다. 베버 총아빠스가 그해 8월 8일부터 9월 14일까지 북간도를 방문했기에 아마도 이 사진은 당시 용정본당 주임 칼리스토 히머 신부가 촬영했을 것이다.<사진 3> 1929년 「용정 본당 연대기」에는 “용정성당 묘지에 300기에 달하는 신자 무덤이 만주의 겨울 혹한에 훼손되었다”고 적혀 있다.
 
<사진 4> 레오나르도 베버 신부 무덤, 유리건판, 1924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노르베르트 베버, 갓등이본당 초대 주임 앙드레 신부 무덤, 유리건판, 1911년 4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선종한 사제와 신자들 무덤 찾아 위령 기도

레오나르도 베버 신부의 무덤 앞에서 한 독일인 선교사가 기도하고 있다.<사진 4> 베버 신부는 1924년 3월 25일 34살의 젊은 나이에 선종했다. 그는 1921년 한국에 파견되어 덕원 신학교 지도 신부와 함경남도 내평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그는 열악한 북간도 지역 선교를 자청해 팔도구에 왔고 얼마 되지 않아 공소 방문 중 쓰러졌다. 사인은 ‘발진티푸스’였다. 팔도구 교우들은 쓰러진 베버 신부를 살리겠다고 담요만 깔린 소달구지에 태워 겨울 삭풍을 뚫고 9시간이나 걸려 용정에 갔으나 손쓸 길이 없었다.

과로로 쓰러진 또 한 명의 사제가 있다.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초 경기도 갓등이 성당을 방문했을 때 초대 주임 앙드레 신부의 묘소를 찾았다.<사진 5> 앙드레 신부는 1888년 7월 갓등이본당에 부임해 이듬해 200명이 들어가는 12칸 초가 성당을 짓고 열심히 사목했다. 혼자서 요양 중인 선교사 파스키에 신부를 병간호하고, 200명이 넘는 본당 신자들의 부활 판공을 끝마쳤다. 그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장엄하게 치른 다음 쓰러져 1890년 4월 13일 선종했다. 갓등이 신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앙드레 신부를 깊이 존경했다. 늘 그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베버 총아빠스가 앙드레 신부의 무덤에 갔을 때에도 장정 여럿이 기도하고 있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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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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