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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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리알] 이별할 때 필요한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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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내가 누워 있을 장례식에서 어린이 성가대가 노래를 불러주는 거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표정하고 차갑게 누워 있는 이 남자를 보게 되면, 무서워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 거라는 생각에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타인의 죽음만을 아는 인간은 그 끝에 대한 상상이 언제나 두렵고 외롭다.



지난해, 10월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며칠간 보냈다.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의 사라짐을 앞두고, 가족들은 여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우선 평소 묵주기도를 자주 하셨으니, 소셜미디어에 있는 묵주기도 방송과 좋아하시던 야구 중계를 계속 들려드렸다. 그리고 서둘러 영정사진도 챙겨 왔다.


이 정도면 된 것일까. 죽음 앞에서 환자도 가족도 완벽할 수는 없다. 나중에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조은경 마리아 수녀님께 이별할 때 필요한 준비에 관해 물었다.


“가족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임종이 다가올수록 병실 복도나 저희 앞에서 우시는 걸 권합니다. 쉽지는 않아요. 슬픔이 북받치니까요.” 하얀 수도복을 입은 마리아 수녀님은 공감과 함께 담담한 시선으로 말씀하셨다. 


“환자는 의식이 없더라도 다 느끼고 계십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경황이 없으실 때가 많아요. 이럴 때 저는 먼저 가족들을 안아드립니다. 어떤 때는 긴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평소 묵주기도를 좋아하셨더라도 내내 방송을 틀기보다는 차라리 일상적인 대화를 하시는 걸 권합니다. 날씨 이야기와 같은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끼리 하는 일상적인 대화만으로도 환자는 안정감을 찾습니다. 우리 가족이 끝까지 나와 함께 할 거라는 확신. 손을 가볍게 잡아드리세요. 그러다 보면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한을 넘어 감사하게 됩니다.”


널찍한 임종실에서 보낸 이틀 동안 아버지는 신음하시다 어디를 가시려는 듯 누굴 찾으시는 듯 거칠게 일어나곤 하셨다. 이때 병실을 채웠던 음악들은 끄고 대신에 창밖에 내리는 가을 빗소리를 들려드렸더라면 어땠을까. 눈을 감고 있어도 삶의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환자의 마음이라 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드리지 못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는지 모른다.


마리아 수녀님께 물었다. “환자 가족으로서는 후회 없이 끝까지 치료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환자를 위해 호스피스를 선택하는 게 옳을까요?”


수녀님은 이를 현실적으로 설명하셨다. “호스피스(통증완화 의료)를 선택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우선 환자와 가족들이,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또 ‘호스피스’가 곧 환자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지체하게 만듭니다. 사실 호스피스가 암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다른 시술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요즘은 완화의료의 수준이 높아져서 환자에 따라 치료와 여러 요법이 병행되는 추세입니다.”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의료진을 비롯하여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헌신을 보며, 일찍 이곳에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죽음 너머의 여정을 준비하는 일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워야 하는 과정이지만 고되고 슬프다. 그러나 호스피스가 아름다운 동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분 중에 특히 기억나는 사례가 있는지 궁금했다. 


“인상적인 분이 계세요. 여자분이셨는데, 죽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본인이 담배도 안 피우는데, 폐암에 걸렸으니 오로지 가족 탓만 했고, 오자마자 의사의 처방 약을 일부러 골라냈으며, 병실에서도 나체로 있으면서 신부님들의 방문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사연을 들어 보니 가는 병원마다 의료 거부를 해서 결국 여기까지 온 거였습니다. 어쨌든 저희는 ‘이분을 끌어안자’라는 결정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분 때문에 한계가 온 적이 있었어요.”


“‘하느님, 저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도움도 받아들이지 않고.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당신께 맡겨 드리는 수밖에 없네요.’ 이렇게 기도하고 회진을 도는데 그분이 갑자기 제 손을 잡으며 잠깐 보자고 하는 겁니다. ‘수녀님이 말하는 그분이, 제 꿈에 나타나셨다’면서요. 저도 뵌 적이 없는 주님을 말이에요! ‘이름은 몰라요. 그냥 수녀님이 믿는 그분이에요. 지금 그분과 제가 겨루며 맞짱을 뜨고 있거든요’라며 고백을 하는 겁니다. 이 순간 제 역할은 사라집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까요. 저는 이분을 통해서 하느님이 인간 내면의 깊은 속을 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가족들과도 화해를 잘하시고 가셨습니다.”


수녀님은, 여러 가지 진료 데이터를 통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분들은 지상에서의 편안한 마무리를 위해 1인실로 이동한다고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이틀 동안 고통 속에 아파하셨다. 아버지가 내쉬는 숨은 고스란히 병실에 있는 아들들에게 전해졌고, 아버지도 아들들의 숨을 호흡하셨다. 숨을 나눈 이들이 바로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내내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곳에 오지 못한 한 분. 엄마였다.


그러나 나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 아버지의 임종을 알릴 수 없었다. ‘어머니 걱정은 마시고 편안히 가시라’는 말씀을 드리자, 뜻을 아셨는지 오랜 기다림을 놓으시고 주님께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 순간 무슨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기억은 언제나 짙은 후회를 남긴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평소에 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기회에 나는 마지막 소원을 다시 말해볼까 한다.


나의 장례식에는 솜사탕이랑 시골 장터 핫도그를 팔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판매하고, 20살 때 들었던 음악이 흐르는 1일 찻집을 열어 잠시 소유하던 물건들을 경매로 팔아 수익금 전체를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다. 그럼, 아이들이 나의 장례식을 덜 무서워하지 않을까. 대신 이걸 다 준비해야 하는 분들은 냉담할지 모른다. 그래도 아름다운 이별 잔치로 어떠한가… 아니다. 됐다. 이제껏 살아온 모든 순간이 더 좋지 않아도 감사할 뿐. 세상과의 이별로는 더없이 충분할 것이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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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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