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11월을 ‘위령 성월’로 지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한다. 특히 연옥에서 정화 중인 영혼들을 위로하고, 기도를 통해 그들의 구원을 돕는 시간을 보낼 것을 청한다. 연옥 영혼들은 자신의 구원을 앞당기기 위한 기도나 덕행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을 보내며 연옥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연령의 구원을 돕는 기도와 대사에 관해 살펴본다.
정화의 순간인 ‘하느님과의 만남’
우리는 평소 하느님 나라에 다다르기 위해 자선과 희생,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등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소죄를 포함한 지상에서 짓는 모든 죄를 정화해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연옥에서의 정화를 통해 죄의 ‘잠벌’에서 벗어나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1031항, 1472항 참조)
연옥의 정화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옥이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인 것과 다른 점이다. 완전한 사랑이시며 최고의 거룩함이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 부당함 그리고 죄스러움을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죽음·심판·지옥·천국」 참조)
연옥에서는 ‘불’이라고 표현되는 고통을 통해 영혼을 연마시킨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우리는 ‘불을 통해’ 고통스러운 변화를 거치면서 그분의 눈길과 그분 마음이 어루만져 주시는 치유를 받는데, 이것은 축복받은 아픔이라고 말했다. 또한 불타는 기간은 이 세상 시간의 잣대로 계산할 수 없으며, 이것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건너가는 시간이라고 밝혔다.
연옥의 고통은 몹시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치릴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아주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하다”고 했으며, 성 아우구스티노는 “연옥에서 잠깐 받는 고통이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연령들은 하느님만이 아니라 우리와도 단절돼 있지 않다.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기에 연옥 영혼들과 우리는 함께 연결돼 있다. 성인들의 통공 안에 있는 신자들, 즉 ‘이미 천상 고향에 이른 사람들, 연옥에서 속죄하고 있는 사람들, 아직 지상에서 순례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류를 통해 서로 선익을 끼칠 수 있다. 하늘의 교회, 지상의 교회, 연옥의 교회는 신비스럽게 협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도와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일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75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화해와 참회」 참조)
“연옥은 존재한다”
연옥의 존재는 성경과 성인들의 말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연옥에 대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여러 부분에서 드러내고 있다. 성 대 그레고리오는 「대화집」에서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마태 12,32)이라는 성경 구절을 통해 ‘내세에서 용서받는’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2항도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5)를 인용하며 연옥 교리가 “성경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관습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성인들도 연옥을 증언한다. 오상의 성 비오 신부는 생전에 여러 번 연옥 영혼을 만났다고 알려졌다. 하루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청하는 연옥 영혼을 만났는데, 평소 그들에게 강한 연민이 있던 성인이 “내일 아침에 미사를 봉헌하겠다”고 하자, 영혼은 “너무 가혹하다”고 울며 사라졌다. 그들에게는 연옥에서의 하룻밤이 그토록 가혹했던 것이다.
성 파우스티나 수녀도 접했던 연옥 영혼에 대하여 일기에 기록했다. 성인은 일기 1185항과 1186항에서 한 정화 중인 영혼이 나타나 단식과 영적 수련을 부탁했을 때, 이를 수행하며 영혼이 받는 하느님께 대한 지독한 그리움을 잠시 느끼는 고통을 체험했다고 적었다.
연령의 구원을 돕는 기도와 자선, 대사
그러나 연옥 영혼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기도하거나 공덕을 쌓아 구원의 시기를 앞당길 수 없다.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들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성찬례와 기도, 자선을 통해 ‘위로와 기운’을 얻을 수 있기에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와 보속을 권한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2항 참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코린토 1서 강해」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드리자고 권고했다. 우리의 도움으로 연옥 영혼들이 천국에 가면, 그때부터는 반대로 영혼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장례미사나 위령미사 봉헌은 죽은 이의 구원을 돕는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79항은 “교회는 죽은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성찬의 제사를 봉헌한다”며 모든 지체가 서로 친교를 이루기에 다른 지체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밝힌다.
“죽은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로 끝나는 ‘식사 후 기도’는 일상에서도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게 한다. 아울러 성모님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 발현해 묵주기도 중 ‘구원을 비는 기도’로 “예수님...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를 바치도록 당부했다. 또한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는 예수님이 성 제르투르다에게 나타나 계시했다고 전해진다. 예수님은 미사 전후에 바치도록 구성된 두 가지 기도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장례식장에서 많이 바치는 주교회의 「상장 예식」의 ‘연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기도다. 하느님의 자비를 애원하는 “깊은 구렁 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소리를 들어 주소서, 내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여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시편 130,1-3: 최민순 역) 등의 내용을 구성진 가락에 실어 망자를 애도한다.
또 신자들은 대사를 통해 자신과 연옥 영혼들의 잠벌을 사면받을 수 있다. 희년에 지정된 곳을 순례하거나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는 등 교황청 내사원 「대사 편람」의 규정을 따르면 대사나 전대사가 수여된다. 이중 위령 성월에 묘지 방문으로 받은 전대사는 연옥 영혼에게만 양도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우리의 ‘대사’”라며 “용서의 경험은 우리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여야 할 필요성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라고 밝히며 대사 은총 참여를 장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