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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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행복을 위한 준비운동: 고통을 경감시키는 구체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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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호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고통의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이를 영적 성장의 계기로 삼으라’고 조언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이 충고를 듣고도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마음을 이해라도 하는 듯, 토마스는 고통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 안에서, 현대 사회의 고통 경감법과 비교해 보더라도 전혀 뒤지지 않는,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현대의 의학은 인간의 고통을 단순히 조작 가능하고 제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그 연구 방향은 고통의 근원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어떻게 하면 고통을 느끼는 경로를 차단할 수 있을까’에 집중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마취나 무통분만이며, 이런 경향은 일반 생활에도 널리 퍼져있다. 또한 현대인들의 다수가 정신적인 고통이 다가오면 알코올이나 마약 등을 통해 고통을 잊어버리려 하고, 심지어 많은 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고통을 차단하려 한다. 


이에 반해 토마스는 고통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즐거움을 통한 고통의 약화


토마스가 제시한 방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치료법은 ‘잠과 목욕’이다. 이것들은 우리의 힘을 되찾게 해 주고 몸의 신체적 균형을 회복시켜 주어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게 해 준다.(I-II,38,5) 밤잠을 줄여도 된다는 특별 허가를 받아서까지 연구에 매진했던 토마스이기에 이런 충고는 더욱 유별나게 들린다. 그럼에도 잠이나 목욕 등이 심장 박동을 정상으로 돌림으로써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치료 방법은, 이미 현대 의학에 의해서 훨씬 더 효과적인 마취와 통증 완화의 방법을 통해서 대체되었다. 하지만 다른 네 가지 방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토마스는 기쁨이나 쾌락이 슬픔이나 고통과 상반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쾌락(Delectatio)’은 고통을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I-II,38,1) 만일 직면해 있는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려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겪고 있던 고통은 약화될 수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은 환자의 슬픔을 감소시킨다. 때로는 슬픔을 잊을 정도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좋은 영화는 우울함에 대한 최고의 치료책이다. 풍선에 바람이 빠질 때 바람을 조금 불어 넣으면 다시 팽팽해지듯, 인간이 느끼는 쾌락도 그것이 어디에서 오든 슬픔의 치료제로 작용할 수 있다.


눈물과 한숨을 통한 슬픔의 배출


그렇지만 진정으로 극심한 고통 앞에서는 잠깐의 즐거움이 마치 한 여름의 뙤약볕에 달구어진 바위 위에 몇 방울의 물을 떨구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토마스는 이런 극심한 고통을 덜기 위해 ‘눈물과 탄식(Lacrymae et Gemitus)’이 자연스럽게 고통을 바깥으로 배출시킴으로써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I-II,38,2) 마음속에 있는 모든 해로운 요소는 영혼의 주의가 그리로 쏠릴 때 더욱 고통스럽지만, 바깥으로 분출될 때는 주의가 분산되어 내면의 고통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울고 싶을 때는,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위로가 될 뿐 아니라 안정이 되고 슬픔을 이기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과 수용, 즉 눈물 흘리기나 깊은 탄식 등도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현대에도 적극 권장되는 방법이다.
 


가까운 이들의 위로와 공감…진리 탐구·종교적 묵상으로
육체와 정신 모두 포괄하는 통합적 치유 이뤄낼 수 있어


친구와 가족의 위로


토마스는 계속해서 친구들의 위로가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고 강조한다.(I-II,38,3 참조) 마치 무거운 짐을 함께 들었을 때 가벼워지는 것처럼, 영혼의 짐인 심적인 고통도 동료들의 위로를 통해 가벼워진다.


또한 친구들이 고통받는 이에게 가지고 있는 ‘공감(Compassio)’이나 사랑은 그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친구나 가족, 공동체와의 교감과 위로는 고통 완화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의 고립과 단절 문제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슬픔을 나누는 것은 토마스가 중요시했던 위로의 힘이다.


진리의 관조를 통한 고통의 극복


이런 일시적인 고통의 완화와는 달리 강렬한 즐거움을 포함하는 더 지속적인 치료제가 있는데, 바로 ‘진리에 대한 관상(Contemplatio Veritatis)’이다. 토마스는 이 관상이 고통을 대단히 완화시킨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 관상의 쾌락은 ‘흘러넘쳐(Redundat)’ 감정에 자리 잡고 있는 고통까지도 완화시켜 준다.(I-II,38,4) 지혜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 관상이 고통과 슬픔을 완화시킨다.


지복직관과 미래에 대한 행복으로부터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토마스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겪는 온갖 시련을 참된 즐거움으로 여겨야 합니다(야고 1,2)”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다가올 기쁨 때문에 타오르고 있는 숯불 위를 마치 ‘장미 꽃밭’ 위를 걸어가듯이 걸어가는 순교자도 소개한다. 진리 탐구와 영적 명상, 신앙적 희망은 현대의 정신 건강과 영성 돌봄 분야에서 여전히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다. 다양한 종교들이 강조하는 명상, 마음 챙김, 종교적 혹은 철학적 묵상 방식들은 고통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는 내적 힘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신학대전」 안에서 구체적인 상황에 바로 적용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의 슬픔 해소법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러 면에서 적용될 수 있다. 그가 제시한 방법들은 단순히 과거의 뒤처진 기술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상호 관계, 몸과 마음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적 치유의 길로, 오늘날 심리치료와 영성 상담, 공동체 활동 등 다양한 현대적 실천에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질병, 사고 등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하느님의 벌’이라는 2차 가해에 가까운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 문제와 같은 ‘고통에 대한 오해’를 집중적으로 성찰해 본다.



글 _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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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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