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교회 전례력 안에서 ‘위령성월’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이 시기는 동시에, 우리 각자가 ‘삶의 끝’을 묵상하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피조물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때로는 창조주처럼 군림하며 다른 피조물을 다루어 오지 않았는지, 잠시 머무는 손님이면서 영원한 주인인 양 살아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11월 10일 브라질 벨렝에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립니다. 1992년 리우에서 처음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정신이 다시 그 땅에서 되살아나는 셈입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인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1990년 380억 톤이던 전 세계 배출량은 2019년 590억 톤으로 증가했고, 우리나라 역시 같은 기간 3.4억 톤에서 7억 톤으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많은 시민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지만, 스스로의 책임을 느끼는 경우는 적습니다. 2023년 조사에서 94.5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누가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정부(72.5)나 지자체(4.5)를 꼽았습니다. ‘시민 자신’이라 답한 비율은 8.5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온실가스 배출의 89가 건물과 수송 부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문제의 근원이 우리의 일상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라고 하셨습니다. 기후위기는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입니다.
기후행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냉난방을 조금 줄이고,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작은 실천이 바로 ‘생태적 회개’의 출발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편리보다 하느님 뜻을 우선하며, 불편함 속에서도 기쁨을 찾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조금 덜 편하게, 조금 더 절제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길입니다. 석탄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 선(善)’을 지향하는 이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위령성월의 묵상은 단지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신앙인의 소명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을 보살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며, 다음 세대에게 하느님의 선물을 온전히 전하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생활 속에서 한 걸음씩 생태적 회개를 실천한다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던’ 그 지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글 _ 전의찬 스테파노(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세종대학교 기후에너지융합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