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전례일인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날이다. 특히 연옥(Purgatorio)에 있는 영혼이 하느님 나라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한다. 보통 죽은 후의 세계를 상정하는 내세관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데, 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은 이들은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으나, 연옥은 하늘 나라로 들어가기 전 필요한 만큼의 정화를 거쳐야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성공회와 개신교는 공식적으로 연옥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유다교는 인정한다. 특히 유다교는 사후 정화의 과정을 게헨나(Gehenna)라고 하며 속죄의 장소로 연옥을 언급하기도 했다. 성 암브로시오는 연옥을 죄와 속된 불순물을 모두 불태우고 순수함만 남는 과정이라고 표현했고, 성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작은 죄를 정화하는 곳으로 신자라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연옥을 가톨릭 교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245년에 열린 제1차 리옹 공의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가톨릭교회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의 근거는 마카베오기 하권 12장 42-45절에서 언급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인데, 여기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었다”에서 찾았다.
문학 작품 중 연옥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일 것이다. 그는 연옥을 7층으로 나누었고 각 층에서 참회해야 할 7개의 죄, 곧 오만·질투·분노·태만·탐욕·폭식·애욕을 회개한다고 하였다. 연옥편은 신곡 중 가장 철학적인 배경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어서 처음 출간했을 때부터 난해하다고 평가받았다.
구스타프 말러는 그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의 2악장을 연옥이라 이름 지었다.(데릭 쿡이 작곡가 사후 만든 버전에는 3악장으로 소개된다) 죽음을 앞둔 노 작곡가는 자신이 걸어갈 길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악은 의외로 활기차며 밝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천국으로 가기 전 바로 다음 단계인 만큼 설레는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나 보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비장하면서 음울한 화성이 튀어나오는 큰 반전이 있다. 이 천재 작곡가가 왜 이런 끝맺음을 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불안감에 휩싸인 보통 사람의 강박을 보여준다고 봐도 되겠다.
슬라트킨이 지휘하는 말러의 교향곡 10번 중 ‘연옥’
//youtu.be/SKnlhnD0UhE?si=NHTvO35vFUIBVYyr
헝가리의 작곡가 리스트는 단테의 「신곡」에 부치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단테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에서 천국에 대한 묘사는 없다. 그 이유는 리스트의 사위였던 바그너가 천국을 묘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인데, 리스트는 별 고민도 없이 천국편의 작곡을 포기했다. 작곡가에게 기쁨을 묘사하는 것이 어둠을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작업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 악장만 20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리스트 단테 교향곡 중 ‘연옥’
//youtu.be/eT_gH4lCkAo?si=Q7uQQmkco_aRT_m1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