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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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장벽사회 넘는 사다리

정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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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일까지 경주에서 개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전 정부부터 준비해 온 국제행사인 APEC 직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캄보디아 총리와 제일 먼저 만나 최근 발생한 캄보디아 내 한국 청년 사망 사고 문제를 공식 의제로 논의했다.

역대 정상회담에서 청년 문제가 공식 의제로 상정된 적이 없던 만큼 이번 사건은 그 자체로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청년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선배 이야기를 듣고, 외국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사례였다. 청년이 낯선 나라에 돈을 벌러 갈 때 벌어지는 일반적인 모습이기에, 국제화된 세상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단순하지 않은 사건이다. 정확한 개요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보도에 따르면 청년의 선배가 자기 이익을 위해 후배를 거짓말로 속여 해외로 보냈다. 또 청년을 소개받은 사람들은 그의 의사에 반해 범죄에 이용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했다. 이밖에 범죄의 온상처럼 보도되는 프린스 그룹, 그리고 그 그룹의 돈을 예치하여 큰 수입을 올린 국내외 은행들, 범죄자들과 한통속이라고 비판받는 캄보디아의 일부 행정조직의 개입이 추론되고,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 현지 대사관과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국정감사에 나온 조현 외교부 장관은 캄보디아에서 작년도 신고 접수 220건 중 총 102건이 미종결 상태라고 밝혔다. 또 그는 “대사관은 이미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증적 조치만 취할 수 있었을 뿐인데, 원인이 되는 뿌리는 그대로 둔 채 증상만 제거하라고 하니 감당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면서 외교부 혼자 해결할 수 없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인이 되는 뿌리는 무엇인가? 그 단서는 캄보디아 정부가 구금하고 있다가 국내로 송환한 한국인 64명에 있다. 이들 중 다수가 20·30대의 ‘MZ 세대’로,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캄보디아에 갔고, 하필 가담한 범죄가 보이스피싱 등인지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

2021년에 서울연구원의 김승연·박민진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장벽사회화를 우려했다. 곧 청년들은 소득·자산·교육·고용·주거 그리고 가족 형성 등에서 다차원적인 불평등과 마주하는, 격차를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사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가는 이유는 ‘사다리’를 찾기 위해서다. 장벽사회의 위기는 청년만이 아니라, 노인·장애인·이주민 등도 겪는다.

필자는 9월 28일자 시사진단에서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제대로 된 K-청정 온라인 국가의 도래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온라인의 혜택을 오롯이 받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청년, 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이다.

따라서 한 청년의 죽음과 같은 마음 아픈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정부에만 그것도 외교부에만 책임을 묻는 아둔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정부도 말로만 인공지능(AI) 소버린을 외치지 말고, 과거 정부가 한국을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듯, 온라인 범죄가 발붙일 수 없는 온라인 청정국가 건설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청년세대에게 사다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도록 불평등한 장벽사회 극복에 정부와 사회 전체가 힘을 모으자.

정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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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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