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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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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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벌써 이십육 년이나 세월이 지나 있긴 하지만, 내가 처음 회심했을 때 뜻밖에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죄스러웠던 대목이 떠오른다. 왜 그게 떠오르냐면, 하고 많은 잘못 중에 ‘내가?’, ‘이런 걸 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내가 냉담 중에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질러 왔던 그 수많은 죄 중에 지금도, ‘왜 하필 그 대목이 그렇게나 걸렸을까’라는 건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내 죄가 한두 개가 아닐진대 말이다. 


당시에도 그게 좀 이상해서, ‘어린 시절에 아무래도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가톨릭 교육을 받아서 그럴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정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죄송함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구약에 나온 대로, ‘바람을 피우다 돌아온 아내의 심정’ 같은 것이라 할까. 돈도 날리고 욕도 하고 폭력도 쓰고 집을 나간 아내 혹은 약혼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제일 미안한 것이 아마 그런 점이 아닐까 싶으니까 말이다.


당시에 만났던 신부님께 바로 이런 점을 두고 많이 울었는데, 그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괜찮아요. 하느님께서는 그것조차도 은총과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겁니다”라고. 그때에는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라고 그저 감동했었는데, 살다 보니 그 말이 문자 그대로 정말 옳았다. 


제일 먼저 그 경험이 나를 도운 것은 당시 나를 유혹하던, - 지금은 이단으로 확정된 - 그룹의 유혹이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병이 치유되었고’라는 화려한 수사들이 내게는 하나도 유혹이 되지 않았다. 이미 나는 얼마간 샤먼들에게서 그것을 보아왔었기 때문이었다. 파라오가 거느리는 술사들도 어느 정도의 이적을 일으키지 않는가 말이다. 오히려 내게 분별을 주었던 것은 그 언어들이었다. 나중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수녀님 몇 분에게 기도를 받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중 한 언어는 이랬다. 


”꽃이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 줄도 모르고, 새가 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하는지도 모르고.“


아직도 나를 울게 하는 이 구절은 당시 한 수녀님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전해 주시던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 하나에 세 시간이 넘도록 통곡하던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인간에 집착하며 칠 년이 넘도록 글도 쓰지 못하고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나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렸던 그 상황을 이 구절은 한마디로 전해주었다. 칼보다 더 아팠고, 어떤 면도날보다도 쓰라렸었다. 


이 구절 하나로 단편을 하나 써도 될 만큼 수많은 생각이 쏟아져 내렸고, 내 잘못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해주신 것이었다. 그 말씀에는 심지어 그것을 곁에서 듣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죄 많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말씀을 들을 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단어들이 배열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단의 언어, 샤먼의 언어는 다르다. 우선 단어의 선택이 천박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것 같다는 나름의 감도 잡게 되었다. 내게 얼마만큼의 분별의 은사가 내려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주변에 일어나는 약간의 이적들이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주변의 거짓 예언자들은 성직자들도 모르게 많이 퍼져 있다. 심지어 돈이나 물건을 받는 이들도 경험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는 남을 찌른다. 수치를 느끼게 한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도 다시 선으로 이끄실 수는 있겠으나, 그냥저냥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수치심으로가 아니라 회개로 이끄시는.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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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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