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신자 중 57가 여성이다. 실제로 교회 내 기관·단체나 본당에서 활동하는 신자들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이끄는 주요 역할은 여전히 남성 중심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그 흐름에 변화가 감지된다. 교회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평신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사제 양성, 본당 사목회 활동,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준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세 명의 평신도 여성을 만났다.
■ 광주가톨릭대학교 전임교원 김명숙 교수, 다양성 안에서 사제 양성 지평 넓혀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평신도 여성 전임교원은 존재 자체로 과제와 의미를 던지는 상징 아닐까요? ‘양 냄새 나는 사제’ 양성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김명숙(소피아) 교수는 2024년 2월 광주가톨릭대학교 전임교원에 임명됐다. 한국교회에서 평신도가, 그것도 신학교 전임교원에 임용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특히 평신도 여성 전임교원은 김 교수가 유일하다.
“현재 광주가톨릭대 전임교원에는 사제, 수도자, 남녀 평신도가 다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 속에서 신학생들이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용 당시 학교 측이 제안한 조건은 ‘신학교 상주’였다. 김 교수는 신학생들과 강의만이 아니라 매일 교정에서 만나며 함께 식사하고, 또 체육대회나 수학여행에도 동행하면서 동고동락하고 있다. 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식구”다.
그 안에서 김 교수는 ‘교수님’으로 불린다는 점이 특별하다. 교수를 교수라 부르는 것이 왜 특별한가 할 수 있지만, 신학생들에게 사제인 교수는 ‘신부님’, 수도자인 교수는 ‘수녀님’이기 때문이다. 신학생들은 김 교수에게 성서학을 배우지만, 동시에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배우는 경험을 쌓고 있다. 일반 대학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신학교에서는 새로운 경험이다.
김 교수는 “지금 교회가 추구하는 시노달리타스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평신도 여성을 전임교원으로 초대해 주신 것이라 본다”며 “신학생들은 앞으로 사제로서 가르치는 자리에 서겠지만, 평신도 교수에게 배운 경험을 통해 ‘평신도에게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한다’는 점을 체득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학교는 ‘교회의 심장’이라 불립니다. 평신도 여성이 전임교원이 됐다는 상징적인 일로, 교회 안에서 남녀의 역할이 구분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 특성과 역량에 따라 활동하는 분위기가 심장에서 혈액이 퍼져나가듯 퍼지지 않을까 합니다.”
김 교수의 임용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신학교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교수는 전국 신학교 사제양성자들이 모이는 전국 가톨릭대학교 교수협의회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다른 교구의 신학교 교수 신부들도 신학교에서의 김 교수의 임용과 사제 양성에서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런 관심 속에서 김 교수는 11월 6일 열린 ‘사제 양성에서 여성의 역할’ 주제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학술발표회 사회를 맡기도 했다.
김 교수는 “광주가톨릭대에서 물꼬를 텄으니 변화의 바람이 있지 않을까 한다”며 “이런 변화를 위해 교회 차원에서 평신도 신학자 양성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이정희 총회장, 세심하고 따뜻한 ‘엄마’ 마음으로 순명
“2016년에 본당 신부님께서 몇 달간 성당 뒤편에 함을 두고 신자들에게 총회장 추천을 받았어요. 그때 제가 80 이상 추천을 받아 본당 첫 여성 총회장이 됐죠.”
전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 이정희(마리아) 총회장은 어느덧 재임 10년 차다. 신자들이 임명 당시 본당 부회장이었던 그를 총회장으로 추천한 이유는 바로 ‘하느님과 신부님께 순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 총회장은 순명하는 자세는 ‘세례명’ 덕분이라며 “교회에서 봉사를 할수록 내 세례명이 마리아라서 하느님과 예수님께 순명하고 그 뜻을 가슴에 깊이 새기신 성모님을 닮아가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밝혔다. 5대째 교우 집안인 외가의 신앙 교육도 컸다.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젊은 보좌 신부와 이야기 나눌 때도 꼭 도포를 갖춰 입고 무릎 꿇고 말씀하셨다고 가르쳤다.
이 총회장은 여성으로서 지닌 강점을 살려 자신의 역할에 임했다. “세심하고 따뜻한 엄마의 마음으로 사목의 큰 줄기를 이루는 신부님을 도왔다”며 “또 부드러운 모습으로 권위의식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니, 낯을 가리던 남성 임원들이나 어르신 신자들도 편하게 대해 주신다”고 말했다.
이 총회장은 본당 사제관 바로 옆에 있던 자신의 집을 본당에 기증해, 11월 준공되는 새 사제관 마련을 돕고 있다. 대지는 남동생 명의였고 건물은 형제들 것이었는데, 모두 함께 뜻을 모았다. 이러한 ‘봉헌’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컸다. 사업을 하던 선친은 익산 작은 자매의 집 성당과 완주 천호성지 부활 성당 신축금을 기부하는 등 교회에 헌신했고, 사제관 옆집에 살던 어머니는 생전 ‘이 집은 본당의 것이 돼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주교좌본당이라 더욱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큰일들을 많이 치렀는데, 그중에서도 본당의 ‘번지’를 찾은 일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이 총회장은 “1947년 설립된 본당은 당시 등기 없이 성당을 세웠다”며 “문화재 등록을 위해 여러 노력 끝에 등기를 설정하여 2023년 전라북도문화재 제9호로 등록될 수 있었고,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대사들을 갑자기 맡게 된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총회장을 본당 전례단원으로 시작해 전례부장, 여성부장, 본당 부회장, 교구 여성연합부회장과 회장 등으로 차근차근 불러주시며 신심과 친교, 실무 역량을 다져주셨다. 이제 이 총회장은 하느님을 뵙는 날까지 본당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성별을 떠나 ‘영원한 생명’이라는 한 곳을 향해 가는 한 형제자매예요. 기도와 협력으로 함께해 주시는 본당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재단법인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김수지 이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통화 조화 ‘다리’ 역할
“WYD는 단순한 청년 행사가 아니라 세대와 문화, 언어를 아우르는 신앙의 축제입니다. 청년과 평신도의 시선이 존중되고, 교회 안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4년 7월, 재단법인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창립되며 WYD를 향한 발걸음이 본격화됐다. 김수지(가브리엘라) 이사는 조직위 이사 중 유일한 청년이자, 유일한 평신도 여성이다.
조직위 이사회의는 그야말로 치열하다. 2027 서울 WYD를 이끄는 주요 기구로서 국내 모든 WYD 관련 행사에 대한 지원 관리를 총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행사까지도 지원,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WYD 관련 사업 계획부터 예산에 이르기까지 검토, 의결한다.
WYD 준비단계 봉사자로도 활동하는 김 이사는 “주로 청년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성별이나 세대를 떠나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신앙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고 이사로서의 활동 소감을 전했다.
WYD 서울 개최가 결정되기 전 ‘WYD 유치준비위원회’에서도 활동해 온 김 이사는 외국의 젊은이 사목 담당자들과도 소통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여성 평신도들이 청소년·청년 사목을 책임지는 리더로 활약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여성의 강점을 살려 소통하며 이끄는 평신도들의 모습에 감명도 받았다.
김 이사는 “청년 대표라는 인식에 머물렀지만, 평신도 여성으로서도 이 자리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금은 한국교회에서 평신도 여성 리더가 적은 것 같지만 앞으로 더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앙 안에서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눈에 띄는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이사는 “교회 안에서의 리더십은 앞에 서는 힘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도록 손을 내미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특히 WYD를 통해서 그동안 당연시되거나 보이지 않았던 구성원들의 역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WYD는 비단 몇몇 교회 기관이나 청년들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모든 구성원의 힘을 모아야 성사될 수 있는 큰 대회이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우리는 모두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때로는 마르타처럼 일하고, 때로는 마리아처럼 기도하며, 누군가는 앞에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나간다”며 “WYD를 계기로 그 다양한 모습들이 서로 존중받으며, 보이지 않는 헌신에도 감사할 줄 아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