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부터 1956년까지 이스라엘 사해 서안 유다 광야에서 발견된 고대 문서들은 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의 핵심 자료다. 특히 쿰란 지역 11개 동굴에서 출토된 850여 편의 문서는 예수 시대 유다 지역의 신앙과 사상을 이해하는 필수 사료로 평가받는다.
‘멜키체덱 사본(11Q13)’은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문헌이다. 이 문서는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의로운 이들을 구원하시며 악의 세력을 심판하신다는 종말 신앙을 담고 있다. 학계는 이 문서를 통해 유다교 내에 존재했던 다양한 메시아 이해와 종말 사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신약성경의 구원과 심판 메시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임장혁 신부(실바노·대전가톨릭대 교수)가 최근 이 멜키체덱 사본을 주제로 예루살렘 ‘에콜 비블릭(?cole Biblique et Arch?ologique Fran?aise de J?rusalem)’에서 박사논문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에콜 비블릭은 1890년 도미니코회가 설립한 성서학 기관으로, 쿰란 사본 연구와 성서고고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다.
「멜키체덱 사본에 등장하는 멜키체덱의 정체성」 제목의 논문은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더욱 관심을 끈다. 그는 ‘페쉐르’라 불리는 쿰란 공동체 특유의 성서 해석 방식을 분석해, 멜키체덱을 하느님이나 인간 메시아가 아닌 천사,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천사 미카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멜키체덱은 종말에 쿰란 공동체를 구원하고 악의 세력인 벨리알을 심판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성경과 쿰란 문헌 전반에서 벨리알과 대적해 승리를 거두는 존재는 미카엘 천사입니다. 따라서 멜키체덱을 미카엘 대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존 연구와 달리 이번 논문은 멜키체덱 사본이 인물의 정체를 직접 규정하기보다, ‘진리의 사람들’, ‘빛의 자녀들’, ‘벨리알’ 같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임 신부는 “마치 소설에서 주변 인물이 주인공의 성격과 사명을 드러내듯, 쿰란 문헌에서도 멜키체덱의 정체성과 역할이 공동체 및 적대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훼손된 사본들의 판독 작업과 긴 시간의 인내였다. 원문이 잘 보이지 않아 특수 촬영된 사진 자료를 확보하고 복원과 비교 작업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필사자들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감동했고, 이런 감정이 쿰란 문헌 공부를 계속하도록 이끄는 동기가 됐다”고 임 신부는 밝혔다.
임 신부는 쿰란 문헌 연구가 초기 교회와 예수 시대의 신앙 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쿰란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런 문헌들을 읽으며 종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며, “쿰란 문헌은 신약 시대의 사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고 소개했다.
앞으로 임 신부는 쿰란 사본 연구와 고문서학을 계속 공부하며, 신학적으로는 메시아즘과 연결된 역사적 예수를 주제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쿰란을 공부하면 할수록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이 더욱 깊이를 더 해 갑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미개척 분야인 쿰란 문헌을 좀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