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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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1. 이 땅의 평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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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전교회장과 남학생’, 유리건판, 1911년 하우현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2>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 랜턴 슬라이드, 1931년 초 원산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르심 받은 평신도

‘평신도’는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며 교회에 사는 세상 사람이다. ‘평신도 사도직’은 세상에 사는 교회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신앙인답게 살아가며 삶의 자리를 복음화함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이처럼 평신도는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밝히고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했다.

아울러 평신도는 성직자·수도자와 함께 교회에 대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평신도는 단지 포도원 일꾼이 아니다.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과 함께 참 포도나무인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가지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평신도에게 있어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근원과 출발점은 바로 ‘세례성사’다.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은 교회 신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원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9) 평신도에게 부여된 교회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선 자신의 신앙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를 받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신자들을 재교육하고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는 전교회장들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사진 1> “이런 열심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종교 운동이다. (?) 여러 사람이 보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리서를 베껴 써서 다른 이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힘을 보탰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95~396쪽)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교회는 100년 가까이 이어진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로 파괴된 교회를 재건했다. 이 일을 맡아 중추적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전교회장들이다. 그들은 본당 신부를 대리해 공소를 찾아다니며 신자들에게 교리교육을 하고, 지역 선교에도 앞장섰다.

1931년 초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함경도 원산대목구 전교회장 회의가 원산성당에서 열렸다.<사진 2> 이 회의를 진행한 원산본당 주임 파비아노 담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원산의 신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주일에 신자들을 어떻게 다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걱정이다. 원산의 임시 성당은 600명도 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성당인데 미사마다 1000명 이상 몰려온다. 교중 미사 때는 제대 주위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앉아 있어서 사제는 제대 앞에서 꼼짝도 못 할 지경이다.”(「분도통사」 563쪽) 성 베네딕도회 남녀 선교사들이 학교와 진료소 등을 운영하며 선교에 큰 성과를 이뤘지만, 전교회장들의 헌신적 공헌 역시 한몫을 했다.

평신도 모두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 ‘가정 성화·복음화’이다.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배우고, 복음 선포와 인간 존엄성·공동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영적 성숙과 성화를 익혀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이 ‘가정 기도’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선교사에게 큰절하는 어린이’, 유리건판, 1911년 4월 갓등이성당,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자직·왕직에 참여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4월 1일 경기도 왕림 갓등이성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성당 마당에서 선교사에게 큰 절로 예를 표하는 한 소년을 촬영했다.<사진 3> “갓등이 마을의 선교 활동은 활기찼다. 방마다 친근감과 호기심으로 넘쳤다. 소녀들에게도 인사할 기회를 주려고,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관습이 지엄하여 방 안에 사내아이가 하나라도 있으면 소녀들은 함부로 범접하지 못했다. 이제는 소녀들이 문과 창문으로 밀고 들어와 툇마루 아래까지 차지하고 앉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곧 개구쟁이 녀석들이 몰려와 제자리를 내놓으라고 우기는 통에 소녀들은 다시 물러났다. (?) 집집마다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새벽 5시, 자명종이 울릴 때도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 소리는 끊일 줄 몰랐다. 사제는 셋인데 제대가 하나뿐이라 이른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지만, 좁은 경당은 벌써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미사 내내 싱그러운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239~241쪽)

평신도는 사제 양성 못지않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교회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평신도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윤리 기준을 식별할 수 있는 시각을 갖도록 배워야 한다. 평신도는 그 수와 역할을 볼 때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회 구성원이다. 평신도 직분은 말할 나위 없이 숭고하다.

평신도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왕직에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교회는 평신도에게서 세상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평신도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지도 아래 성경과 교리·교회 가르침을 교육받고 양성될 때 더욱 성숙하고 활기있게 자신을 성화하면서 세상을 그리스도화하고 복음화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

아울러 평신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끈 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이 감사의 표현은 교회 가르침을 생활 속에 실현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성화된다.
<사진 4> ‘신자 집을 방문한 사우어 아빠스’, 랜턴 슬라이드, 1921년 이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사진 5> ‘다양한 차림의 아이들’, 랜턴 슬라이드, 1920년대 용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해야

초대 원산대목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는 신자 가정을 방문하는 걸 즐겼다.<사진 4> “예비 신자들이 입을 모아 독특한 가락으로 교리문답을 낭독했다. 꼭 노래처럼 들렸다. 안드레아 신부가 유창한 한국어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 모두 조용히 경청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인간 영혼의 본질과 운명, 구원,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대해 강의했다. 이따금 하는 질문에도 안드레아 신부가 답변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교리 수업이 끝났다. 집까지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고도 이튿날 아침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남자 몇이 돌아가지 않고 조용히 교리문답서를 넘기고 있었다. 개신교 신자였다.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닌지는 지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분도통사」 283쪽)

교회는 청소년·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화의 주역으로 교회를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권고한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첫째 사도가 되어야 하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을 고려하여 자기 자신들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들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12) <사진 5>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들과 신앙의 은총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교회의 삶이다.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 선포의 가장 효과적 형태는 다름 아니라 매일매일의 복음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복음에 일치하는 일관성 있는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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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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