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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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로 기억 잃은 남편… 음악 강사 아내는 산재 전문가로

[타인의 삶] (27)남편 사고 후 산재 전문가 된 김요안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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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산업재해 관련 사무장 일을 하는 김요안나씨. 남편의 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산재 피해자들을 도우며 신앙 안에서 희망과 사랑을 잘 지켜냈다.
 


목숨만 건진 남편
퇴사 30분 앞두고 기계 끼임 사고
뇌 손상·왼쪽 눈 실명·손가락 절단
인지장애까지 15가지 상해 입어

아내의 홀로 선 싸움
변호사 사무실 10곳서 수임 거절
독학해 산재 지식으로 무장
무보수 변호사 만나 소송했지만
아무런 보상 못 받아

산재 피해자 돕는 희망 메신저
소송 끝나고 산재 피해 카페 개설
지식·용어·소송 절차 무료 나눔
외국인 근로자 산재 인정 돕기도

“받아들이는 게 제 소명”
뭘하든 항상 ‘감사합니다’ 기도
남편 간병하며 책까지 펴내
초긍정 간병일기 SNS에 기록



김요안나(요안나 프란체스카, 40)씨는 성당 오빠와 결혼했다. 30년 전 부산교구 반송성당에서 복사단과 성가대 활동을 함께하던 초등학교 시절에 만나 서로의 첫사랑이 되었다. 신앙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2012년 혼인성사를 하고, 이듬해 딸을 낳았다.

2019년, 딸이 일곱살 되던 해에 페인트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 정성민(베드로, 42)씨는 페인트 제조기계에 몸과 머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날은 퇴사 날이었다. 30분 뒤면 아내가 데리러 갈 참이었다. 이후 남편은 모든 기억을 잃었고, 성당에서 미사 반주를 하며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던 음악 강사 아내는 지금 산업재해 전문가가 됐다. 남편이 그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부산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난 김요안나씨는 두툼한 서류 묶음을 건넸다. 남편의 산재 사고 후 회사가 작성한 산업재해 조사표와 김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였다. 사업주가 작성한 산업재해 조사표의 ‘상해 종류’란에는 ‘골절’이라고만 쓰여 있었지만, 남편 성민씨는 무려 15가지 상해를 입었다. 머리뼈가 부서지며 뇌를 다쳤고, 어린이 수준의 인지장애를 얻게 됐다. 시신경 손상으로 왼쪽 눈을 실명했고, 손가락 2개가 절단됐으며, 만성 신부전증과 무후각증, 당뇨까지 앓게 됐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졌다.

남편의 사고 이후 김씨는 간병과 법적 대응이라는 두 길 위에 섰다. 간병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법적 대응은 회사와의 싸움이었다. 산재 관련 용어는 낯설고 어려웠다. 변호사 사무실 10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답은 대부분 거절이었다. 돈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그는 밤새 법률 서적과 판례·의학 자료를 탐독했고, 강좌를 들으러 다니며 독학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한 변호사가 무보수로 사건을 맡아줬다. 법적 싸움이 끝난 뒤 그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회사는 너무 영세했고, 사고 현장에는 CCTV도 없었다.

김씨는 판결 선고를 받은 뒤 산업재해 피해자 카페를 만들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산재 지식과 용어, 소송 절차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산재 관련 소송 절차에 대한 상담을 받으려면 변호사 사무실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일이 닥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일은 아닐 거라고요. 남편이 사고 난 후에 뇌질환 관련 카페에 들어가 보니 회원이 10만 명이 넘는 거예요. 내가 몰랐을 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하느님이 이런 일을 겪게 하신 이유는 나처럼 헤매는 사람을 위해서 먼저 이 길을 가라고 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는 SNS를 통해 취업비자로 입국해 일하다 다리가 절단된 스리랑카 외국인 근로자가 산재 인정을 받도록 도운 적도 있다. 치료를 위해 하늘병원 조성연(요셉) 원장을 소개했고, 병원에서는 치료비 모금활동도 벌였다. 그 외국인 근로자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에 귀화를 결심하고 가톨릭 세례까지 받았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 취직해 일하고 있다. 김씨는 이 일을 통해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것은 주님이 청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2022년 결혼 10주년을 맞아 김요안나씨는 남편 전성민씨와 함께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했다. 요안나씨는 그의 인스타그램에 “ 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또다시 오늘 하루를 다 잊었지만, 즐거운 기분은 사진 속에 녹여 찍어두었으니 참 다행 ”이라고 썼다. 김요안나씨 제공
 
김요안나씨가 인스타그램에 써놓은 글. 소하랑은 그의 필명이다.




김씨는 유방암 환자다. 남편의 사고 후 목 디스크와 유방암이 차례로 덮쳤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고 생기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된 남편은 김씨의 어머니가 돌본다. 사위를 아꼈던 장모는 사위 간병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김씨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암으로 잃었고, 어머니와 김씨는 환자를 돌보는 일에 철학이 생겼다. 모녀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김씨는 남편을 간병하며 2년 전에는 책까지 펴냈다. 제목은 「휴가갑니다」이다.

“큰일이 닥치면 원망부터 하잖아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런데 책을 마무리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좀 쉬라고, 휴가를 주신 거구나 싶었어요. 그만 달리라고. 남편이 네 가지 일을 동시에 했거든요. 하느님이 강제로 휴가를 주신 거죠.”

남편의 사고 이후에도 그는 “삶에서 달라진 게 많지만 사실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통장 잔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다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주변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사람들과 소중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어요. 기도가 일상이 됐고요. 무엇을 하든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상담을 받던 중 어떤 분이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순명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실 텐데 굳이 뭐하려고요?.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 아닌가요? 남편은 손가락 두 개가 잘린 왼손으로 사과를 깎아요. 그러면서 ‘내 손가락은 언제 자라?’라고 묻더라고요. 그러더니 ‘내가 태어났을 때는 손가락이 있었겠지? 그래도 나머지 손가락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밝았던 김씨는 여기서 눈물을 흘렸다.

“너무 멋있는 사람이에요. 남편한테 정말 많이 배워요.”

김씨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픈 남편 곁을 꿋꿋이 지킨다. 남편 성민씨는 사고 당일부터 기억을 잃었다. 사고 당시 일곱 살이던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자신을 닮은 여동생이라고 하더니, 가끔 “저 커다란 애는 누구야?”라고 묻는다. 남편은 아내를 엄마라고도 부른다. 기억을 잃은 남편 곁에서 그는 여전히 밝게 살아간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입니다. 하하. 웃고 살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울면서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지난해 겨울 KBS 인간극장- ‘하나뿐인 내 사랑’편으로 방송됐다. 그가 몸 담고 있는 법률사무소는 남편의 사고를 무보수로 맡아준 변호사의 사무실이다.

가장 힘들 때 그를 버티게 해준 생활성가 두 곡은 ‘사랑한다는 말은’과 ‘아무것도 너를’이다. 요안나씨는 이 노래들을 부르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해인 수녀의 ‘사랑한다는 말은’에는 “어둠과 절망 속에도 놀랍고 황홀한 고백은 곧 사랑”이라는 내용의 가사가 담겼다. ‘아무것도 너를’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문에서 영감을 받아 김충희 수녀가 작곡한 생활성가로, 모든 것은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까르르 웃기만 하던 그에게 기도 지향을 묻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늘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나에게 힘을 주셔서 고맙다고 기도해요.”

그는 산재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온갖 산업 재해 기록이 담긴 서류가 쌓여있었다.

요안나씨가 초긍정의 마음으로 써내려간 남편의 간병일지와 삶 이야기는 인스타그램(so_ha_rang)에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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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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