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 전례력에서 11월 9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라테라노에 대성전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이다.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세워진 첫 성전으로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에 따라 모든 가톨릭교회의 어머니 격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10세기 동안 교황이 머물던 곳이다. 이 성전의 입지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비롯해 어느 성당보다도 높다.
바실리카는 ‘왕족의’라는 뜻인데,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으로 장방형 회장이라는 특별한 형태를 가진 공공 건물이었다. 가톨릭에서는 높은 위상을 가진 성당을 ‘대성전-바실리카’라고 지칭한다. 대성전은 전 세계에서 로마에 있는 라테라노 대성전, 성 베드로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 단 네 곳뿐이며 치외법권 지역이다.
교회로 대표되는 종교 공동체는 중세에는 국가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개 왕이나 영주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웠던 권위와 세력을 과시했던 이들이 급격하게 꺾이게 된 것은 이후 국가의 형성이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대성전에 부여된 지나친 권위와 숭배는 오히려 세력을 잃은 교회의 결속을 위함이라는 의견도 있다.
음악에서 바실리카에 준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흐의 평균율 곡집인 ‘프렐루드’와 ‘푸가’가 아닐까 한다. 1721년부터 1741년까지 쓰여졌으니 이 천재 작곡가도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업이 필요했나 보다. 이 작품이 음악사에서 지존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평균율을 사용해 모든 조성으로의 이동이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균율을 바흐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를 사용해 드높은 경지로 승화한 것은 바흐가 최초다. 음계를 처음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 때부터임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200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연주하는 바흐 평균율 곡집 1권 1번
//youtu.be/c8rxkDAaaJ0?si=iv2TSXNv2fGuqrrf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바실리카로 뽑는 이도 적지 않다. 완성하기 전 세상을 떠나 일부분만이 유작으로 남아 있고 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곡을 완성했지만,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어떤 작곡가도 견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인정된다. 완벽에 가까운 대위법과 고전시대 풍성한 화성의 능숙한 사용, 가사와 음악의 완전한 결합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첫 곡인 ‘영원한 안식’은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장중한 리듬과 순간적으로 뿜어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 절제된 관현악법과 아름다운 화성으로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 특히 소프라노 솔로가 부르는 기도문은 천상의 멜로디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아름다움의 정점에 선 이 작품을 바실리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카라얀이 지휘하는 모차르트 레퀴엠 중 ‘영원한 안식’
//youtu.be/ht-GwA7UV20?si=0GnMZD7nO_x1Q8-5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