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자립이 꼭 거주시설에서 나오는 것만 해당될까요? 거주시설에서도 장애인 자립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특정한 장소를 벗어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김상용 교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거주시설의 자립생활과 자기옹호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왔다.
김 교수는 “거주시설 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과정”이라며 “시설과 지역 사회 공간적 이분법인 탈시설 정책을 넘어 어디에 살든 개인의 선택과 의사가 존중받고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자기주도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립은 시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 1급인 아들을 두고 있는 김 교수는 자립을 하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조건은 ‘자기결정’과 ‘자기옹호’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기옹호란 자신의 장단점과 필요한 것을 아는 것이다. 자기인식과 현실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자립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기옹호를 하게 됨으로써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서 “또 자기옹호 점수가 높을수록 시설에서의 자립생활을 원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시설 안에서도 자기결정과 자립이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사회복지법인 거제도 애광원 송우정 대표이사는 애광원의 역사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의 시설 내 자립에 대해 소개했다. 송 대표는 시설 내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전하면서 좋은 시설이 있기에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송 대표는 특히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늘리고자 애써왔던 일화를 꺼냈다. 송 대표는 “어느 날 한 시설 보호자가 수표를 돈이 아닌 줄 알고 파쇄기에 넣은 적이 있다. 은행에 가서 하소연도 했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면서 “이에 ATM(현금인출기)을 시설 내로 들여와 경제교육을 시키고자 노력했고, 2년간 훈련을 시키니 우리 시설에서 ATM을 사용할 줄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없게 됐다”고 전했다.
변경희 한신대 교수는 중증장애인 24시간 통합돌봄 제도의 결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최중증발달장애인들이 24시간 개별 지원을 받기 위한 점수 책정이 현장에서의 필요와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최중증장애인들은 통합돌봄을 영구적 지원 수혜가 아닌 5년 지원에 그쳤다는 사실도 꼬집었다. 더불어 장애등급 폐지로 경증 발달장애인이 최중증발달장애인보다 서비스 수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장애인 본인과 보호자의 고령화로 가정 내 돌봄도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어진 토론회는 가톨릭사회복지연구소장 김성우(청주교구) 신부가 좌장을 맡았다. 김 신부는 “자립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 없이 단순히 독립적 공간을 살아가는 것이 자립이라는 오해가 분명히 있다”며 “장애인 거주시설 안에서 자립에 대한 주제를 논의하는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장애인들의 건강한 자립구조를 위해 시설선진화법이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현아(딤프나)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회장은 “탈시설 정책은 모든 장애인 거주시설이 인권침해 공간이라는 전제로 출발해 시설 폐쇄를 주장하는데, 이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개인의 장애 정도와 행동 특성, 가족 상황에 따라 유연한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장애인은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어 “재가와 시설을 구분하지 않고 장애인을 중심으로 균형 있게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복지의 핵심 원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거주시설 선진화법 추진을 요구하며 △전문화 필요성 △시설환경 개선 △통합지원체계구축 △이용자 참여 등 내용을 담을 것을 당부했다.
탈시설지원법이 폭력적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임무영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변호사는 “탈시설지원법을 거부하거나 이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면서 “법안에는 정부 7명, 민간 8명 등 총 15명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 산하에는 사무기구를 두게 돼있는데, 특정 세력이 장관급 집행기구를 갖게 되는 꼴”이라고 일갈했다.
정부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육성과 지속 관찰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보건복지부 이왕석 사무관은 “이미 50인 이상 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이 결과 바탕으로 인권지킴이단을 내실화하겠다”며 “다인실을 1·2인실 전환 추진하고, 중증장애인 24시간 개별지원을 충실하게 준비하고 사회복지사에 대한 처우개선 및 인원 확충을 착실하게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토론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개호(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재섭·김미애(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했다. 조계원·이성윤(민주당) 의원, 전 21대 의원 최재형(국민의힘) 종로구 당협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오세훈(스테파노) 서울시장은 영상으로 축사를 보냈다.
김재섭 의원은 인사말에서 “탈시설이라는 이름 아래 장애인의 의사나 가족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단순한 보호가 아닌 장애인의 선택과 삶의 질에 중심을 둔 복지 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