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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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성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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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최진석 교수님의 책이나 강의 중 ‘건너가는 자’ 시리즈를 가장 좋아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강의로 먼저 들었는데, 하도 좋아서 다섯 번쯤 듣고 나중에는 눈물을 흘렸다. 후에 책이 나왔길래, 사서 읽었는데 이 또한 다른 방식으로 좋았다.


이 강의는 불교의 경전 중 대승 불교, 그중에서도 핵심인 ‘공’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반야심경’ 강의다. 연식이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 경의 첫 구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는 “Gate Gate Paragate”인데, 원어를 읽다가 ‘Gate’라는 단어의 영어 뜻, ‘문 혹은 관문’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손색이 없어서 약간 놀라기도 했다. 아무튼 이 뜻은 “가자 또 가자 저 건너편으로! 깨달았도다” 정도로 해석된다 하겠다. 그리하여 여기서 이 강의와 책의 핵심 단어 ‘건너가자’가 나온다.


건너간다는 것의 의미를 철학자 최진석은 ‘익숙함에서 낯선 것으로, 진부에서 창조로 간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만일 게으르고 쉬운 길을 간다면, 결국 남의 행복에 기여할 뿐 자기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불행할 것이라는 경고로 채우고 있다. 이 책에는 내가 요즘 기도 생활에서 괴로웠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심도 있는 해답을 주고 있다.


먼저 건너가기 위해 인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수행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침마다 같은 성무 일도를 이십여 년 하다 보니 -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사람들과 비켜있어 - 큰 감동들은 사라지고 거의 외우게 된 구절들 때문에 약간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깨달음이란 바로 ‘누가 단순한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느냐의 문제’라고 일갈한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서가 떠올랐다. 얼핏 보면 그 지루한 반복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에 맞추어 같은 시편을 노래할 때 흐르던 눈물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들이 ‘왜 행복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소명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여기서 그는 소명이 외부의 부름이 아니라 내면의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들은 안다. 소명, 부르심이라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이는 빅터 프랭클이 ‘로고테라피’에서 설파한 “의미를 잃어버린 자는 삶을 잃어버린다”라는 말과도 결국 통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일견 지루하게 보이는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 인간은 점차로 자신도 모르게 ‘건너가게 되는데’, 그때 “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여기서 상이란, 일찍이 에픽테토스가 말하고 안셀름 그륀 신부님이 강조하셨던 “가난이, 질병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실체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지어놓은 상, 그러니까 이미지 때문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중에서 나를 가장 긴장시켰던 말은 그런 것이었다. “궁금해하지 않는 자, 질문을 잊은 자는 이미 영혼의 성장판이 닫힌 자이다”라는 것. “인간이 원래 그래”라는 말로 나의 상처를 감추려 했던 마음을 들킨 기분이라고 할까. 다만 한가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면, 나는 아직도 이 지구상의 70나 되는 물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그러니 아직 내 영혼의 성장판을 닫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가을에 책 한 권을 권한다. 「건너가는 자」 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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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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