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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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52·끝)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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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메달 뒷면에는 과학의 여신이 자연의 여신이 쓰고 있는 베일을 들추며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과학이란 자연의 참모습을 보려는 인간의 지적 행위이며 노력임을 암시한다. 역사적으로 과학을 통해 인간과 세상, 우주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는 천동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했으며, 1610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증명했다. 1687년 뉴턴은 중력을 연구한 후 「프린키피아」를 통해 무엇이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했으며,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 논쟁의 불을 지폈다.

현대 물리학의 서막을 연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21세기 양자역학 시대의 첨단 과학은 인간이 달과 우주로 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세상을 변화시킨 과학의 힘에 놀라고 인간 지성의 비범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으로 바라본 자연과 세상은 신비함 그 자체다. 과학은 자연의 숨겨진 원리와 규칙을 찾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과학은 세상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지만 그 이유와 본질은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 현상은 보편적 법칙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종교와 다를 경우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different)’ 것과 ‘틀린(wrong)’ 것은 분명 별개다. 다르다는 의미는 같지 않다는 것이고 틀리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의 편견과 무지의 산물이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종·민족·성별·종교·문화·가치관 등 여러 방면에서 보아왔으며 이에 따른 오해와 갈등의 비참한 결과를 목격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관점과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절대 진리를 추구한다는 궁극의 목적은 같다. 이번 주일인 11월 16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관용의 날’이다. 관용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며 진보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이다’라고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회에 의해 파문당한 갈릴레이를 359년 만에 사면하면서 ‘과학 덕분에 종교는 잘못과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종교 덕분에 과학은 우상숭배와 거짓 절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인에게 과학과 신앙이라는 두 가지 길은 하느님의 절대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과학과 신앙은 인류에게 있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을 줄 수 있는 선물이자 축복이다. 이제 과학과 신앙의 조화라는 궁극의 지향점을 향해 1년간 연재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 자신과 세상에 질문해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지난 1년여 간 ‘과학과 신앙’을 연재해주신 필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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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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