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YD 앞두고 첫 청년 인식 실태 조사] 경제난·취업난 심화 속 청년 10명 중 4명 이상 ‘번아웃’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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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열린 가톨릭대 사목연구소 제29차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청년들이 조별토의에서 청년 사목이 나아갈 방향을 말하고 있다.
신자 청년 절반 이상 ‘생명·혼인·가족 형태’ 교리와 다른 입장
세대간 갈등 넘어 ‘상호소외’… 권위주의적 교회 문화 지적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약 2년 앞으로 다가왔다. 교회는 2027 서울 WYD의 대상이자 주체가 될 청년들의 삶과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자 신자·비신자 청년을 대상으로 인식 실태를 첫 설문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교회가 젊은 세대 삶과 가치관을 더욱 세밀히 파악하고자 정량적으로 확인한 기초조사이자, 사목 방향성의 토대가 될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간 청년은 담론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최근에는 ‘MZ(밀레니얼+Z)’로 불리며 시대의 약자 내지 보듬어야 할 존재로서만 여겨지고 있다. 청년과 깊이 동행하고자 하는 사목적 노력은 교회 내에서도 부재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특히 서울 WYD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기 위해선 “청년들이 가진 문제 의식을 파악하고 청년을 수동적 대상이 아닌 주체자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교회는 현 세대 청년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서울 WYD 조직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와 가톨릭대 사목연구소(소장 방종우 신부)는 데이터 업체에 의뢰해 일반 청년 1973명을 표본추출해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9개 교구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2278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신자 청년의 표본은 30~34세가 가장 많았는데, 청년회 활동 핵심층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 청년에게는 88개 문항, 신자 청년에게는 시노달리타스 등 111개 문항의 질문을 던졌다. 서울 WYD 조직위 등은 해당 조사를 바탕으로 청년 사목의 새로운 틀을 정립해 나갈 방침이다.
10명 중 4명 번아웃 경험
조사결과 청년들은 경제난과 취업난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청년의 삶은 ‘경제적 스트레스’에서 ‘미래 불안’ 및 ‘스펙 쌓기와 실적 압박’ 등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번아웃’을 겪은 이도 적지 않다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또 자신의 경제상황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의 불안은 신자 청년과 일반 청년을 가리지 않았다. 신자 청년 중 61.9, 일반 청년 59.6가 ‘미래 불안’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반 청년 66.8, 신자 청년 58.6에 달했다. 더 좋은 스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응답도 일반 청년 58.5, 신자 청년 62.5를 기록해 과반의 청년이 공통된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청년들도 10명 중 4명에 이르렀다. 특히 신자 청년(48.1)의 비율이 일반 청년(40.7)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삶이 어려울 때 도와줄 누군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일반 청년은 30.2, 신자 청년은 14.8가 없다고 응답해 두 집단 사이 간극이 컸다.
자살·혼전 관계·사형제, 교리와 다른 생각
신자 청년이어도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생명과 혼인, 사형제에 관해 교회 가르침과는 다른 경향을 보였다. 자살 문제와 관련해 일반 청년은 42.3가 윤리적으로 허용해도 된다고 답했지만, 신자 청년은 18.5에 불과했다. 하지만 ‘안락사를 윤리적으로 허용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일반 청년 83.1, 신자 청년도 66.8가 허용해도 된다는 입장을 보여, 두 집단 모두 생명에 대해 자기 결정권적 모습을 보였다. 사형제가 비윤리적이냐는 질문에도 일반 청년 69.3, 신자 청년 62.3가 동의하지 않았다.
‘혼전 성관계’나 ‘혼전 동거’를 윤리적으로 허용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두 표본 모두 80 이상이 동의했다. 혼전 성관계의 경우 일반 청년은 89.1가, 신자 청년도 87.2가 동의한다고 밝혔다. 혼전 동거에 대해서도 일반 청년 88.8, 신자 청년 82.8가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해 신자 청년 과반이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성혼은 일반 청년 59.7가 동의했으며, 신자 청년도 50.9가 수긍했다. 정자·난자 기증을 통한 대리부모 출산에 대해서도 신자 청년 56.2가 윤리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고 응답해 교회 가르침과 크게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 ‘정치 성향’으로 갈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를 신앙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결론 지었다. 실태조사 담당과 제1주제 발제를 맡은 정규현(서울대교구) 신부는 “신자·비신자 차이보다 ‘성별’과 ‘정치 성향’이 남녀 사이를 가르는 분절점으로 일종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자 청년 표본 내에서도 남성 중 40.1가 ‘보수·중도보수’ 성향인 반면, 여성은 56.2가 ‘진보·중도진보’ 성향을 띠었다.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에 대해선 남성은 ‘자유와 권리보장’, 여성은 ‘사회적 약자 배려’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종교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의 비율이 높았다. 일반 청년에서 75가 이 의견에 동의했다. 신자 청년은 35가 동의했지만, 93.2가 ‘종교는 중요하다’고 답해 상충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신자 청년 중에도 ‘점술, 무속, 사주, 타로’ 등 무속 신앙을 찾는 경우가 30를 넘었다.
청년의 불안, 세대 문제로
청년의 미래 불안은 세대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WYD 봉사자 영성팀은 제3발제 ‘서울 WYD와 이 시대 청년들의 불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영성팀은 양적 연구에서 나온 ‘불안’을 토대로 청년 10명을 대상으로 질적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불안을 ‘세대 관계’ ‘고립’ ‘갈등’ 등 키워드로 분석했다.
임나경(체칠리아)씨는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최종 보고서에 나온 ‘상호소외’를 언급했다. 임씨는 “상호소외는 ‘더 이상 공유되는 욕구나 목표가 없고 부딪힐 여지도 없이 거리가 멀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전과는 다른 세태와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촉발돼 현재의 세대 간 문제는 갈등을 넘어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간극이 생겨 ‘상호소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임씨는 “기성세대가 꼰대로 낙인 찍힐까 봐 조언을 피하고, 청년 세대의 문화를 모방하는 현상(영포티) 등은 세대 간 갈등을 넘어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간 간극이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동시에 위로와 회복을 위해 찾은 교회 안에서도 청년층은 소외되고 고립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자 청년들은 인터뷰에서 △의무와 죄책감으로서의 신앙 전수 △본당 행사에서의 값싼 노동력 치부 △권위주의적 문화 역시 청년층을 소외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교회, 청년을 공동체 주체로 여겨야
제2발제를 맡은 이지운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교황청 국제청년자문기구(IYAB)에서의 활동을 소개하며 “청년 사목은 청년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IYAB 역시 2018년 제15차 시노드 회의에서 청년들의 교회 내 역할을 요구해 실현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 WYD를 일회성 행사로 보지 말고 청년들을 ‘공동 책임자’로 여기고 교회와 청년이 서로 ‘경청’하는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 WYD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는 “불안의 원인인 여러 ‘사회악’들에 대해 교회는 ‘연민’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여러 불안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공청회를 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