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은 세계 사형반대의 날이다. 1786년 11월 30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대공 피에트로 레오폴도가 세계 최초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날을 기린 기념일은 2002년 이탈리아교회 평신도 단체 ‘산 에지디오 공동체’(The Community of Sant’Egidio)가 전 세계에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제24차 세계 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특별기고와 함께 사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한국교회의 노력과 전망을 살펴본다.
사형 집행 중단 30년…"흉악 범죄는 늘어났을까"
마지막 사형 집행이 1997년이었으니, 한국에서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형 선고는 여전히 가능하지만, 크게 줄었다. 2010년 이후 사형 확정자는 3명에 불과하며, 마지막이 2016년이다. 법원도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다. 이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형을 당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흉악 범죄가 늘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의 범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살인 등 흉악 범죄도 줄어드는 추세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살인 범죄율은 0.53건으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낮다. 사형제가 흉악 범죄를 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형 집행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진 상황에서도 흉악 범죄는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도 명확하다. 2023년 기준 사형폐지국은 144개국이고, 2023년 한 해 동안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16개국에 불과했다. 사형을 집행한 건수도 중국(1천여 건), 이란(최소 853건), 사우디아라비아(172건), 소말리아(최소 38건)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
사형제 폐지는 이제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나라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이로 인해 흉악 범죄가 늘어났다는 것이 확인된 경우는 없다. 심지어 폐지 후 지속적으로 범죄율이 감소한 나라도 있었다. 오히려 사형제도 존치국들은 범죄율이 유독 높은 나라들이다. 흉악 범죄와 사형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위해서 사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흉악범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정의라며 사형을 옹호하기도 한다. 물론 사형을 옹호하는 여론도 있고, 가해자를 사형시키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형제 페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가장 마음 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형제의 효과에 대한 미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 제도가 피해자 가족의 치유와 사회 복귀에 도움이 되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한다. 그보다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심리 치료와 지원, 사회의 따뜻한 관심, 충분한 금전적 배상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피해자 가족을 위해서라면, 단번의 사형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형제 폐지론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형이라는 형벌 대신, 한편으로는 무기징역형 등 중형을 선고하면서 다른 한편 피해자 가족의 치유와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자는 제안이다.
“사형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도 사형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살인자도 신의 명령을 어긴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사형시키는 복수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 사형제도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반생명의 문화”이며,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정확히 그런 맥락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는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는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인간 불가침성과 존엄에 대한 공격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가르치며, 굳은 의지로써 전 세계의 사형 폐지를 위해 활동한다”는 조항이 2018년 추가됐다.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무작정 범죄자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생명 존중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자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제에 반대하고 사형수들을 돌보면서도, ‘살인 피해자 가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사형수의 생명조차도 경시하지 않았던 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을 사형수와 함께했던 조성애(쟌 말구) 수녀도 살인 범죄 피해자 가족 모임을 만들어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에서 오랫동안 교정사목에 힘써온 이영우(토마스) 신부도 한편으로는 재소자들을 위해 활동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 피해자 가족을 지원했다. ‘생명 존중’이라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실천했던 것이다.
아직 사형제가 폐지되지 못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지했고, 선고도 크게 줄었다. 2010년 이후 사형제 폐지 법안은 7번이나 발의되었고, 이번 22대 국회에도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2015년 제출된 법안에는 172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했을 정도로 큰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매년 10월 10일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대표자들이 모여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인도적이고 효과적인 형사정책을 위해서도, 종교인의 관점에서도 사형제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사형제의 완전한 폐지,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글 _ 홍성수 토마스 아퀴나스(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