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해온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현실 인식을 빗대는 말이지만,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이고, 살갗처럼 내 몸에 붙어 있어서 떼어낼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전공 관련 분야만 눈에 보였고, 졸업 후 회사에서 근무할 때 보였던 것들은 담당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도 ‘하천에 흐르는 물의 양이 어떤지, 식생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쓰레기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만 보였다.
그런데 세례를 받은 후 어떤 곳을 방문할 때면, 예전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성당이다. 나와 아내는 캠핑이나 여행을 가면 그 동네나 지역에 있는 성당을 방문하는데, 가급적 미사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한다. 운 좋게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미사를 드리고 난 후에 성당을 둘러보고,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성당만 둘러보고 오곤 한다. 성당 모습은 어떤지, 십자고상은 어떤 모습인지, 성모님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성전은 어떤 느낌인지 등을 순례하듯 둘러보고 아주 짧은 기도를 바친다.
기도는 묵상과 성찰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처음 방문한 성당을 둘러보면서 바치는 기도는 주로 ‘이렇게 새로운 성당을 방문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심에 대한 짧은 감사’가 된다. 주님으로부터 어떤 응답을 받는 기도는 아니라 해도 처음 방문한 성당에서 드리는 잠깐의 기도는 새로운 모습의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몇 년 전 여름 어느 작은 동네에 놀러 갔다가 성당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작지만 꽤 오래된 듯 보이는 성당이었는데, 마침 미사를 30여 분 앞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여름 휴가차 갔기 때문에 반바지·반팔 차림에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어 미사 참여를 고민했다. 더구나 그 성당은 성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그때 마당에서 묵주를 들고 서 계신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저희가 놀러 왔다가 미사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복장이 이렇습니다. 미사 드리러 들어가도 될까요?” 신부님은 “정장 입고 놀러 오시는 분은 없잖아요. 상관없습니다. 들어가셔도 괜찮아요”라고 말씀해주셨다. 나와 아내는 신부님 말씀에 불편한 마음을 지우고 미사에 잘 참여하고 나왔다.
처음 방문한 낯선 성당에서의 미사는 매주 가던 본당에서의 미사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우리가 평상시 만나는 주님은 사랑의 주님, 평화의 주님 등 여러 모습의 주님이 계시는데, 그날 여행지 미사에서 내가 만난 주님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지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자유를 느끼며 여유와 힐링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자유와 휴식의 주님이셨다. 놀러 갔던 여행지에도 주님은 계셨다.
“샤론 평야는 양들이 풀을 뜯는 목장이 되고 아골 골짜기는 소들의 휴식처가 되리라. 나를 찾는 나의 백성에게 이렇게 해주리라.”(공동번역 「성서」 이사 65,10)
김기형(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