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을 기념하는 ‘Raising Hope’ 콘퍼런스는 교회 안팎의 전 세계 기후활동가들이 모여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의 다짐과 희망을 나누는 장이었다. 여기서 만난 필리핀 활동가에게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였는데 이젠 봄! 여어어르음, 가을겨울! 이런 1년을 보내고 있어.” 그가 답변했다. “필리핀은 여름, 태풍, 태풍, 태풍이야. 피해를 복구하기 전에 다음 태풍이 오지.”
맙소사! 그곳 참가자들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기후 재난을 마주하고 있었다. 투발루처럼 국토가 물에 잠겨가는 곳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처럼 기후 재난에 대응하려 해도 채무에 허덕이느라 인프라 구축이 어려운 곳도 있다. 섬 나라들은 대형 허리케인과 폭풍에 노출되어 있다.
누군가는 오늘의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누군가는 느긋하게 바라본다.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 시각일까. 콘퍼런스 첫째 날, 레오 14세 교황님께서 연설하시고 무대 한가운데의 얼음조각을 축복하셨다. 그린란드의 피오르에서 가져온 2만 년 된 빙하 조각이었다. 콘퍼런스 기간 빙하는 ‘실시간으로’ 조금씩 녹아내리며 오늘의 기후 변화와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상징했다. 참가자들은 빙하수와 동티모르·잠비아·아일랜드의 물을 섞으며 녹은 물이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이들과 지구의 눈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상징을 통해 재난이 시시각각 커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공유했다.
활동가들은 빙하의 녹은 물을 브라질 벨렝의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현장으로 가져갔다. 국제사회에 빙하가 정말 다 녹아버리기 전에 행동하라고 촉구하며, 화석 연료 시대의 종식, 생태부채 탕감 및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정의 실현 등의 정책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연이은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필리핀 활동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재난 현장에서 냉소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그 자리로 가서 호소했다.
“저는 홍수와 폭풍으로 모든 것을 잃은 지역 사회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남반구는 스스로 초래하지 않은 위기의 짐을 여전히 지고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가 경청하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신뢰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앞서 COP30에 간다는 활동가들에게 ‘우리가 가면 정말 변화가 있을까?’라고 물어보았다. “우리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어.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목소리를 낼 수 있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이 글을 쓰는 지금, COP30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논의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감히 예상할 수 없다. (한국은 탈석탄동맹에 가입한다면서 2035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53~61로 제출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가별 소극적인 NDC에 맞서 ‘찬미받으소서 운동’은 민중온실가스감축목표(People’s Determined Contribution, PDC)를 조직해 COP30 의장국인 브라질에 ‘빙하의 녹은 물’과 함께 2000건의 개인과 공동체의 목표를 제출했다. 더디게만 흘러가는 화석연료 투자 철회에는 62개의 신앙공동체 기관이 서명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더딜지언정 우리는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더 큰 변화를 위해 좀더 큰 추진력, 기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곧 희망, ‘생태적 회개에 바탕을 둔 희망’이다. 구체적인 이 현실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희망의 기세를 만들어가자.
오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