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낙태 합법국 아일랜드의 경고,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낙태 합법화로 촉발된 생명경시 풍조 장애인·노인·노숙자 등 약자계층 위협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낙태약 중 모체에서 태아에게 가는 영양분 등을 차단해 사망케 만드는 미페프리스톤 박스. OSV


낙태 합법화와 낙태약 도입이 정부 국정 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행복추구권·재생산권·건강권 등 온갖 감언이설이 낙태를 합법화하는 데 힘을 싣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의 미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은 이미 있다. 2018년 국민 투표를 통해 이듬해 낙태를 합법화한 아일랜드다. 아일랜드에서는 임신 12주까지 낙태할 수 있다. 이후 낙태율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형국이다.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살해하며 ‘낙태 합법국=태아 살해국’ 오명의 역사를 쓰고 있다. 낙태약 남용과 이에 따른 합병증, 소외계층 외면 등 사회문제는 더욱 악화하며 생명경시 백태(百態)가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제1832호(11월 2일자) 보도에 이어, 낙태로 인한 아일랜드 사회의 각종 폐해를 더 깊이 조명했다.



죽음으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

“낙태가 합법화되니 이주민·난민·유색인종·성전환자와 같은 소외계층의 위기임산부 권리는 또다시 외면받았습니다. 국민투표에서 승리하고 나자 많은 사람이 등을 돌린 거죠.”

스웨덴 말뫼대학교에서 세계정치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라 보델슨씨는 아일랜드 낙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낙태 합법화에 공식처럼 동원되는 것이 ‘위기임산부’다. 그러나 막상 낙태가 합법화되자 어려운 형편 속 위기임산부들의 권리는 외면받고 있다. 보델슨씨도 낙태를 찬성했지만 “대다수가 낙태 합법화를 이루기 위해 특정 집단의 권리가 희생됐다고 느꼈다”고 했다.

2018년 국민투표 전, 아일랜드에서는 다양한 낙태 찬반 캠페인이 벌어졌다. 현장에는 긴 머리에 환하게 웃고 있는 다운증후군 아이도 있었다. 낙태 반대 캠페인 ‘Love Both’는 이 아이의 사진을 보이며 “낙태가 합법인 영국에서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은 태아의 90가 낙태되고 있다”고 외쳤다.

가톨릭헤럴드는 “낙태 합법화 이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장애를 지닌 태아 낙태가 2023~2024년 동안 전년 대비 56.25나 늘었다”고 밝혔다. 낙태 합법화가 부른 태아 죽음의 참상이 더욱 현실화된 것이다.



여성을 망가뜨리는 독약, 낙태약

지난해 아일랜드의 낙태는 합법화 6년 만에 30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일랜드 보건부(HSE)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아일랜드에서 시행된 낙태 건수는 1만 852건으로, 2018년 2879건에 비해 280 늘었다. 역대 최고치다.

부작용 또한 속속 보고되고 있다. 영국의 한 그리스도교연구소가 전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일랜드 여성 3명 중 1명은 낙태약 복용 후 합병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일랜드 남서부 병원의 낙태약 합병증 발생률에 대한 4년간 연구를 보면, 조사된 149건 가운데 46건에서 합병증이 나타났다. 코크대학 산부인과 연구진은 조사 여성 중 14명이 태아의 시신이 뱃속에서 완전히 나오지 않아, 자궁을 수축해 태아 시신을 모체에서 배출해주는 낙태약 ‘미소프로스톨’을 추가 복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 6명 중 1명은 낙태에 실패해 태아 시신을 수술로 제거해야 했다. 8명은 큰 출혈을 겪었고, 2명은 중증환자 집중 치료시설에 입원했다.

아일랜드 보건부 로레인 슈완버그 차관은 “낙태 후 가장 흔하게 보고되는 사례는 감염·과다출혈·자궁 손상·임신 조직(태아 시신) 잔류”라며 낙태의 위험성을 시인했다.

아일랜드의 낙태 반대단체 ‘프로라이프 캠페인’의 엘리스 멀로이 생명 운동가는 “정부는 낙태와 관련해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에 진심으로 대처하거나, 급증하는 낙태 건수를 줄이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합법화만 시켜놨지, 산모와 태아를 위한 후속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낙태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

낙태의 상처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아일랜드 타임스는 “켄 오플린 하원의원은 2022년 낙태했음에도 살아서 태어난 아기가 12명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엔 체중 500g 이상이거나 임신 24주 이상인 아기만 포함됐다. 그렇게 태어난 대부분 아기가 출생 후 중대한 선천적 기형을 앓고 있었다. 12주까지 낙태가 허용되고 있지만,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그 이상 된 태아도 낙태되고 있었다.

2019~2022년 아일랜드에서 낙태 후 살아서 태어난 아기는 총 33명이다. 이 중 29명이 중대한 선천적 기형을 앓았다. 아일랜드 타임스는 “임신 24주 미만인 태아가 살아서 태어나는 경우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흔히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논리로 임신 24주가 낙태 허용 주수의 마지노선으로 언급되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24주 미만 태아의 생존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24주도 낙태 허용 주수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없는 셈이다. ‘낙태는 살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대목이다.



미끄러운 경사로

생명 경시 풍조는 더욱 확산 중이다. 아일랜드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케빈 도란(아콘리·엘핀교구장) 주교는 교계 통신 OSV에 “7년 전 낙태를 합법화하는 데 사용됐던 대부분 주장이 이제는 조력자살과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로’다. 공이 경사로를 내려가면서 가속도가 붙어 통제할 수 없게 되듯 낙태 문제가 그렇게 된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앞세워 아무렇지 않게 태아를 희생시키는 현상이 노인·노숙자·장애인, 다시 여성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모두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 주교단은 2022년 HSE에 제출한 ‘2018년 임신중절법(낙태법) 운영 검토에 관한 의견서’에서 “국가가 특정 생명을 처벌(희생)할 수 있다면, 어떤 인간의 생명도 안전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명권이 무너지니 인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네 아이의 어머니인 가톨릭 신자 클레어 브레넌씨는 2023년 10월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 밖에서 ‘낙태 종식을 위한 기도’ 팻말을 들고 주기도문을 암송했다가 체포됐다. 낙태 여성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낙태법상 지정된 ‘낙태 안전 접근 구역’에서 기도하는 행위도 체포와 처벌 대상이 된다. 낙태하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생명권과 표현·종교의 자유가 처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상이다.

도란 주교는 지난 10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과학은 수정된 배아가 고유한 생명체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며 “태아를 ‘인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시대 많은 여성은 역사상 가장 교육받은 세대로, 낙태가 살해 행위임을 잘 알면서도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며 생명을 죽인다”며 “이는 출산을 가로막는 심리적·사회적 장벽이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아일랜드 샤론 키오건 상원의원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던독 출신 코너 오다우드씨가 2023년 7월 1일 더블린에서 열린 생명대행진에서 무대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OSV
 
생명 운동가들이 2023년 7월 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생명대행진을 하고 있다. OSV


높아지는 생명 수호에 대한 요구

낙태 합법화 이후 심각해지는 생명경시 풍조 속에도 가톨릭교회와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아일랜드 생명대행진은 19년째 열리고 있다. 지난 7월 더블린에서 열린 생명대행진에는 시민 2000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생명은 승리할 것이다’ ‘낙태 중단’ 깃발을 흔들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급증하는 낙태 문제를 속히 해결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바로 옆 영국에서도 지난 9월 역대 최대 규모의 생명대행진이 열렸다. 행진은 영국 의회가 역사상 가장 반생명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며 이뤄졌다. 6월 영국 하원의원들은 조력자살 법안과 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낙태한 여성의 형사 책임을 면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낙태 합법화의 태풍이 유럽과 세계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국가들에서 ‘생명 수호’를 향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1. 26

시편 86장 5절
주님, 당신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십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