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확고하게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반대한다.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당할 수 없는 최고의 존엄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대신 환자에게 무익한 연명의료 중단은 허용한다. 생명 존중과 존엄한 임종 준비 원칙 아래에서만 연명의료가 이어지는 데 동의하며, 연명의료 중단은 의료인이나 환자 본인·가족이 결정할 수 있는 의료행위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찬성도는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조력 존엄사(조력 사망)’ 합법화에 82가 찬성했고, 대한의학회지 최신호 논문을 보면 “예상 수명 3개월 암 진단 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35.5가 안락사를, 15.4가 의사 조력 자살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이 지표를 보면 우리 사회 평범한 시민들이 생의 말기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삶의 끝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과 싸우는 과정을 보면서 형성됐을 가능성 이 높다. 이는 가톨릭 신자를 포함한 신앙을 가진 많은 이가 같은 현실을 맞닥뜨릴 때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호스피스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입원 대기표를 받아야 하고, 2주가 지나면 퇴원해야 하는 등 호스피스·완화 의료 여건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
마침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최근 개최한 학술 세미나에서 ‘병원 문을 나서는 호스피스’, 즉 기존 호스피스의 틀을 넘어 지역과 가정으로 확산하는 생애 말기 돌봄 네트워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구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 제안이 죽음에 대한 사람들 가치관을 바꾸는 대안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