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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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철거 위기를 넘어… ‘자선 병원’ 꿈이 현실로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가난한 이들의 의사, 선우경식 요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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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요셉의원 환자 대기실 모습.


환자 증가로 개원 석달 만에 약값 지급도 어려운 처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 시행 후 ‘완전 무료 진료’로 전환
재개발 압박 속 추기경과 후원자들 사랑으로 이전 기금 모아




자원봉사 의료진 헌신으로 시작된 요셉의원

요셉의원은 상근인 선우경식 원장이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열 명의 자원봉사 의료진들은 각자의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오후 6시경부터 진료를 하기로 했다. 내과·소아과·산부인과·치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영상의학과·신경정신과·물리치료 과목과 함께 사회사업상담과도 운영했다. 수녀 한 분이 간호사로, 일부 지역 대표와 신자, 수도자 여러 사람이 봉사자로 나섰지만, 몰려오는 환자들로 매일 매일이 다른 병원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선우경식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은 사명감으로 뭉쳐서 난관을 헤쳐나갔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었다. 모금액으로 병원 전세 계약금, 공사비, 기증받지 못한 장비 중 꼭 필요한 의료기를 준비하고 나니 남은 돈은 얼마 없었다. 약은 도매상에서 6개월 할부로 가져왔지만, 의사 친구들이 고개를 저으며 걱정했다.

“석 달을 못 버틸 거야. 큰 병원도 운영이 어려운 판에, 월 500원에서 1000원을 받는 조합비에 500원씩 받는 진료비로 병원을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해. 아무리 의료진이 자원봉사라고 해도 상근 직원 인건비에 약값,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과 건물 유지비가 나올 것 같아? 그건 이상이고 꿈이야.”

친구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하루 60명으로 예상했던 환자가 100명을 넘으면서 각종 검사와 치료 비용과 약값 부담이 늘어났다. 지금까지는 약값을 안 갚으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도매상들에 주문하면 요셉의원은 약만 사고 돈은 주지 않는다며 더 이상 약을 못 주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11월 말, 도매상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경리 직원이 놀라서 그에게 달려왔다. “원장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김수환 대표를 바꾸라며 호통을 칩니다.”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제가 원장이니까 저에게 말씀하시죠.”

“원장은 필요 없고 김수환 대표 바꿔요. 아니, 약을 천만 원어치 넘게 갖고 가고 한 푼도 갚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요셉의원은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의 부설 의원이었고, 가톨릭사회복지회 대표가 김수환 추기경이라 요셉의원의 법적 대표 역시 김 추기경이었다.

“대표님은 지금 안 계시고 이 병원의 실질적 책임자는 접니다. 한 달만 기다려주시면 다만 얼마라도 갚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겠어요. 하지만 만약 한 달이 돼도 안 갚으면 김수환 대표를 고소하겠습니다. 그리고 돈 갚을 때까지는 약을 절대 못 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선우경식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는 가족들뿐 아니라 의사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손을 벌렸다.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웠지만,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봉사자들도, 다니는 성당에서도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줬고, 요셉의원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도 후원금과 약품 지원이 들어와 위기를 넘겼다.

 
1993년 10월 16·1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요셉의원 이전기금 마련 바자회.
 
1989년 12월 13일 요셉의원을 사목방문한 김수환 추기경.
 
선우경식 원장(왼쪽)과 산부인과 이진우 선생.
 
신림동 초기 주사실 처치 모습.
신림동 요셉의원 초기 어린 환자를 진료하는 선우경식.

소식지 발행해 정기후원자 모집

1989년 7월, 우리나라에서도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조합원들은 조합비와 의료보험비를 이중으로 내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며 떠났다. 그때부터 요셉의원은 완전 무료진료로 전환했다. 그러자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의료보험에서 소외된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선우경식은 연일 만원인 환자 대기실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거나, 노숙하면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어서 그들은 요셉의원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는 불규칙한 후원금만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 소식지를 발행하면서 정기후원자를 모집해 근근이 버텨나갔다.

청천벽력 같은 재개발 소식

1991년 개원 3년이 지나 4년째로 접어들자 정기후원자가 300명 이상으로 늘어나고, 일반 후원도 늘어나면서 병원 운영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때 병원이 세 들어 있는 관악종합시장 건물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이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2년 안에는 재개발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건물을 신축해야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입주자분들이 빨리 나가주면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 그럼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장소를 알아보겠습니다.”

선우경식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서울 시내 건물들의 전세가 올라 지금의 보증금으로 어디에 둥지를 틀 수 있을지 암담했다. 그는 원장실에서 나와 기도실로 향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주님, 이건 또 무슨 뜻이옵니까.”

그는 요셉의원이 초창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문을 닫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 일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매일 아침 십자가 앞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다.

시간은 흘러 1993년이 되었다. 다행히 재개발 사업은 지체되고 있었지만 언제 퇴거 명령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선우경식은 10월 16~17일 이틀간 명동성당 앞마당에서 열리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바자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은 ‘각계 온정 기다리는 요셉의원 - 지역개발로 오갈 데 없는 처지, 6년간 가난한 환자 8만 명에 무료진료 활동, 16일에 이전기금 마련 사랑의 장터 개설’ 등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힘을 보탰다.

이때부터 이전을 위한 후원 기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금융인 모임 미사에서 요셉의원을 위한 특별봉헌의 시간을 마련해 큰돈을 모금했고, 가톨릭 약사회·가톨릭 여성연합회·가톨릭 결핵 연합회 등 여러 단체와 개인·성당에서 기금을 보내왔다. 선우경식은 통장에 모이는 기금을 보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향한 하느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서 3년을 못 버틸 거라던 요셉의원이 문 닫지 않았던 건, 하느님의 배려라는 말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재개발이 되어도 길거리로 나앉지 말라며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모였다. 그들이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믿었다. 선우경식은 힘을 얻고 관악구와 영등포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 어디인지 찾기 시작했다. <계속>



 

이충렬 실베스테르,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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