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광고들이다. 그런데 광고에서 가장 자주 클로즈업되는 광경은 특정 상품을 썼을 때 느끼는 행복한 표정이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앞으로 다가올 불행들을 나열하며 그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보험 관련 광고도 적지 않다.
행복감을 느끼는 장면과 끊임없이 다가올 불행을 예방하라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두려움은 행복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취업, 노후, 건강), 사회적 평가와 비교(열등감, 실패), 과거 경험과 후회, 생활환경 변화, 병리적 요인(불안 장애, 공포증), 생존 본능(자연재해, 범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성찰을 많이 남겼다. 특히 그는 두려움을 정념으로 다루기도 하고 성령의 선물로 다루기도 하는데, 지금은 정념으로서의 두려움과 그와 반대되는 담대함에 대해서만 고찰하도록 하겠다.
두려움에 대한 토마스의 정의와 성찰
토마스는 두려움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자연적인 두려움(timor naturalis)과 ‘자연적이지 않은 두려움(timor non naturalis)’을 구분한다.(I-II,41,3) 자연적인 두려움은 그야말로 본능에 의한 두려움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그에 비해 비자연적인 두려움은 인식을 전제로 하는 두려움이다. 예를 들어 인간들은 아무리 체구가 작고 못생겼어도 폭군이나 독재자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가 나타나면, 벌벌 떨면서 피하게 된다.
이어서 토마스는 두려움을 ‘미래에 일어날 재난이나 고통’ 앞에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으로 규정한다: “두려움은 ‘미래의 악’과 관련되는데, 그 악은 두려워하는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즉 그에 맞서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I-II,41,4) 따라서 두려움은, 지각·상상에 의해 인간의 마음으로 미래에 마주칠 악의 이미지가 들어올 때,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이를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발생한다. 두려움은 이성의 판단과 상상력이 결합한 결과로 생긴다.
물론 선도 그 선을 애호하는 이들이 그것이 상실될까 봐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의 간접적 대상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악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은 동시에 두려움이 우리 영혼에 침입할 수 있는 길들을 보여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직접적 대상은 악이다.’(I-II,42,1)
두려움의 원인과 결과
그렇다면 무엇이 다양한 두려움들을 불러일으키는가? 토마스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대상의 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우리는 즉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갑자기 일어나는 것, 뜻밖에 발생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은 더 지속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I-II,42,5&6) 단순히 환상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주체의 나약함’도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I-II,43,1&2) 다가오는 악을 물리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려움에 빠진다. 나약한 우리는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런 일이 흔하다. 두려움의 연쇄는 한없이 계속될 수 있다.
토마스는 두려움의 다양한 결과도 보여준다. 두려움은 심장을 수축시키고 숨을 멈추게 하며, 떨게 하고 창백하게 하고, 육체의 힘도 사라지게 한다. 두려움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은 움츠러들고 행동이 제한되며 자신 안으로 물러나게 된다. 또한 두려움은 다른 모든 정념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악이 임박해 있지 않을 때보다 잘 숙고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우리가 더 기꺼이 조언을 구하고 충고에 귀를 기울이게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지나치지 않다면 영혼의 힘을 촉진하기도 한다.(I-II,44,1-4)
두려움에 맞서는 ‘담대함(audacia)’이란 정념
악이 다가온다고 해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두려움이라는 정념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에 따르면, 그 악이라는 동일한 대상은 때로는 우리 안에서 두려움과는 반대되는 정념인 담대함을 일깨운다.
담대함이란 끔찍한 악을 만났을 때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선을 추구할 때 취하는 충동적이고 용감한 움직임에서 성립된다.(I-II,45,1) 그것은 언제나 선을 추구하고 악을 피한다는 희망에서 비롯된다.(I-II,45,2) 어떤 사람이 자신의 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위험을 겪어낸 그의 체험, 그가 성공적으로 행위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고찰 등은 희망을 직접적으로 증가시킨다. 또한 자기편에 있는 사람들이나 하느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는 것 등은 그 희망을 강한 담대함이 되게 한다.
그런데 토마스는 겪게 될 어려움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정념으로서의 담대함이 아니라, 이성적 인식의 단계들을 거쳤기 때문에 어려움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것을 ‘진정한 담대함’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담대함은 위험을 온전히 인식하고 있으며 모든 어려움과 패배를 알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가까이에 있는 악에 맞서 싸우러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담대함이 이성의 규제를 넘어 과도할 때 두려움의 결핍 때문에 악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II-II,127,1-2)
현대 사회에서 쾌락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그것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져 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두려움을 단순히 억압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성찰하고 대처하여 삶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기회로 변화시켜야 한다. 두려움은 인간을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행복을 방해한다.
토마스가 말한 대로 두려움은 삶을 위축시키지만, 이성적 성찰을 통해 담대함을 실천하면 극복과 성장이 가능하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먼저 두려움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도망가지 않고 점진적으로 직면하며, 자신을 격려하는 가족, 친구 등의 지지 체계도 잘 활용해야 한다. 토마스가 강조한 담대함의 개념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선을 위해 행동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두려움에 좀 더 잘 대처함으로써 결국 더 깊은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글 _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