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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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영국의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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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르네상스는 한마디로 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정치적으로 수용된 문화적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었고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단절되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영국은 프랑스보다도 한 세기 늦은 17세기에 르네상스를 받아들여 겨우 60년 정도 지속하였습니다.


또한 영국의 르네상스는 문화 예술의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문인이나 예술가의 수가 적었고 고전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이들을 후원할 건축주들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프랑스를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이니고 존스(Inigo Jones, 1573~1652)라는 건축가에 의해서 영국 르네상스는 나름의 의미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니고 존스는 1610년부터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영국의 르네상스를 발전시키고 정착시켰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르네상스의 미술과 건축을 접한 것은 20대 때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그는 먼저 화가로서의 역량을 키웠고, 이후 팔라디오의 건축물과 건축 이론서의 영향을 받으면서 건축가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1세가 왕위에 오른 1603년에 존스는 영국으로 돌아가 가면극 무대 설계에 집중하였습니다.


존스는 1609년 프랑스에서 필리베르 들로름의 건축물을 보고 영국에도 르네상스 건축이 꽃피우기를 희망하였습니다. 1613년 40대가 된 존스는 왕족과 귀족들 가운데 건축에 관심 있는 후원자를 만나 이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였고, 이때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서(번역본)와 팔라디오의 도면들을 구입하고 돌아와, 프랑스에 르네상스 건축 서적과 도면들을 보관할 도서관을 건립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과 자료 수집을 통해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직접 접한 존스는 로마의 정통 고전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당시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는 고전주의 건축물을 통해 스튜어트 왕조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길 원했는데, 존스의 로마 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으로 신교를 만든 영국은 런던이 신교의 중심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런던이 로마의 고전주의를 이을 정통성을 갖고 있어서 제2의 그리스도교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이니고 존스가 의뢰받은 대표적인 건축물은 구(舊) 성 바오로 대성당(Old St. Paul’s Cathedral)의 보수와 그리니치의 퀸스 하우스(Queens House in Greenwich) 그리고 코벤트 가든 광장(Covent Garden Piazza)과 성 바오로 성당(St Pauls Church)입니다.



구(舊) 성 바오로 대성당은 108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로마네스크 양식과 초기 영국 고딕 양식으로 2세기에 걸쳐 지어 1240년에 봉헌되었습니다. 이후 14세기에 증축하여 당대의 성당들 가운데 가장 긴 평면과 가장 높은 첨탑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 들어 건물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했고, 종교개혁으로 성당 내부가 파괴되기도 했으며, 1561년에는 낙뢰로 첨탑에 불이 붙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에 제임스 1세는 런던의 주교좌 성당인 성 바오로 대성당을 보수하고 개축하여 영국 국교회의 종교개혁에 대한 의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보수 공사를 맡은 존스는 1633년부터 10년간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서쪽 파사드를 르네상스 고전 양식으로 개축하였는데, 지상층에는 열주로 로지아를 만들었고, 중간층은 네이브와 아일의 높이 차이로 생기는 경사 부분을 그리스 신전의 소용돌이 문양으로 처리하였으며, 최상층은 삼각형 페디먼트로 마감하였습니다.


하지만 존스의 작업은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성당 본건물과 함께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1675년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에 의해 새로운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니고 존스는 영국 국교회의 성 바오로 성당을 베드포드 백작의 의뢰로 1631년 설계하여 2년 후에 완공하였습니다. 이 성당은 종교개혁 이후에 런던에 새로이 지어진 첫 번째 영국 국교회 성당입니다. 이 성당의 설계에는 ‘헛간(barn)’ 개념이 들어 있는데, 백작은 설계를 의뢰하면서 헛간 이상으로 짓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존스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헛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존스는 이 성당을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이론을 따라 로마의 신전 형태로 설계하였습니다. 코벤트 가든 광장과 면한 성당의 정면에는 단순한 교회에 어울리는 토스카나식 오더가 사용되었고, 엔태블러처도 프리즈 없이 아키트레이브만 있는 단순한 구성을 취했습니다. 또한 장식의 사용도 극도로 절제하였으며, 페디먼트의 코니스에는 작은 사각형 부재를 넣어 헛간의 지붕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성당 출입구는 조금 더 단순하게 구성된 서쪽 정면에 있는데, 페디먼트는 같은 형태지만 로지아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당 내부도 헛간 개념으로 기둥 없이 단일 공간으로 구성했으며 제단을 제외하고는 장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쪽은 바닥을 높여서 오늘날과 같은 제단 구역을 만들었습니다.



존스는 이러한 성당들에 앞서 1616년부터 1635년까지 그리니치 궁전 부지에 영국 역사상 최초의 르네상스 건물인 ‘퀸스 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이 건물은 존스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직후에 팔라디오의 영향을 받아 지은 것으로 퀸스 하우스 내의 ‘그레이트 홀’과 ‘튤립 계단’이 유명합니다. 그는 이 외에도 1619년부터 1622년까지 ‘연회당’을 설계하였는데, 이 역시 팔라디오의 영향을 받았으며, 루벤스가 이 연회당의 천장화를 그렸습니다.


존스는 이런 활동을 통하여 영국 르네상스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습니다. 다만 6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르네상스 건축이 성장 발전하였기 때문에,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지역 양식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충돌에 대한 타협과 조화의 과정 없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표준 고전주의가 그대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국의 르네상스는 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자신도 모르게 스쳐간 한바탕 꿈같았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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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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