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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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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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었다. 벌써 나이가 96세셨고, 몇 년 전부터 병고로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온 가족도 어서 주님께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아버지는 가셔야 할 길을 가셨다’ 생각했지만, 툭하면 눈물이 나왔고, 삶이 허망했다. 정말 아버지는 완전히 사라진 걸까 나에게는 이토록 믿음이 없었던 걸까. 


‘너는 내세를 믿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했었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고 내세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도, 이 생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기뻤어요.” 


그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예수의 생애를 믿고, 예수의 죽음을 믿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리라는 것도 믿는다. 그런데 그걸 다 믿으면서, 왜 나는 아버지가 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최근 이탈리아 순례를 떠나기로 한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묻고 싶었다. “하느님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죽음 너머 세상에 대해 확신이 아니더라도, 약간의 빛이라도 주십시오.”


아시시는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이제 거기 계시기 때문이었다. 시신이 안치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다다랐을 때는,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로,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줄이 너무도 길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의 어머니 안토니오의 인터뷰를 들었다. 아쿠티스 성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꿈속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죽을 때 모습 그대로 너무도 환한 빛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고. 그리고 물었다고 했다. “어머니 영원에 대해서 아세요? 영원 말이에요.” 


그리고 성인은 거기서 중요한 예언을 두 가지 했다. “저는 곧 성인품에 오를 것이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가지게 될 거예요.” 어머니는 놀랐다고 했다. 성인품에 오르는 것은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이제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여러 번 노력했지만, 의사는 이미 그녀에게 불임 판정을 내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이 두 예언은 곧 이루어졌다. 그는 성인품에 올랐고, 그녀는 나이 만 45세에 임신한다. 아기들은 아쿠티스가 죽은 날로부터 4년 후에 정확히 같은 날 태어났다. 


나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유리관 속의 성인을 보았다. 죽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성인의 육신은 곧 눈을 뜰 듯 생생했다. 나는 리지외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육신과 기적의 메달을 만드는 소명을 받았던 가타리나 라부레 성녀의 육신,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 육신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차원이 다른 놀라움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고서야, 죽음의 너머 세상이 있지 않고서야, 20년 전에 죽은 젊은이의 몸이 곧 뒤척이며 뛰어날 듯 누워 있다니! 그저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곳을 나왔다. 성인이 꿈속에서 했다는 질문이 내게도 던져졌다. 


“영원을 아시나요? 영원 말입니다.”



글 _ 공지영 마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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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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