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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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제단 십자가 ‘지게 진 예수상’

[리길재 기자의 공소(公所)를 가다] 1. 의정부교구 법원리본당 주내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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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법원리본당 주내공소는 주한 미군 제2사단 소속 4명의 군종 신부가 한국인 신자들을 위해 7년간 노력 끝에 지은 성당이다. 주내공소 전경.

박해 시대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 외진 곳으로 숨어 들어가 교우촌을 일궜다. 교우촌 중심에는 회장의 지도로 운영되는 공소가 자리했다. 공소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뿌리이며 신앙의 못자리다. 목숨을 담보로 함께 삶의 자리를 일구고 영혼의 평화를 안겨주는 거룩한 기쁨을 나눴던 신앙 선조들의 삶터 ‘공소’를 다시 연재한다.

2023년 한 해 50차례에 걸쳐 공소를 연재했다. 안타깝게도 공소는 도시화한 현대 사회에서 급쇠락할 뿐 아니라 폐쇄되고 있고 또 잊히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연재를 통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공소를 인식하고, 모든 공소가 신앙의 유산으로 잘 보존될 수 있길 희망한다.

 
의정부교구 법원리본당 주내공소는 1965년 12월 4일 ‘한국의 모후’께 봉헌됐다. 공소 마당 한쪽에 설치된 루르드 성모상.

1965년 12월 4일 ‘한국의 모후’께 봉헌

첫 소개지는 의정부교구 법원리본당 주내공소다. 「법원리본당 50년사」에는 주내공소 주소와 “1958년에 설립되었고(미7사단 19포 군종 Freon 신부/회장 김창재 방지거), 1964년에 현재 모습의 건물이 지어짐”이란 내용만 게재돼 있다. 당시 「경향잡지」와 가톨릭신문을 뒤졌다. 「경향잡지」 1966년 1월호 22쪽에 “‘파주리 공소에 성당 건립’- 법원리 본당 관내 파주리 공소에 아담하고 작은 성당을 건축하고 12월 4일 하오 2시 30분에 강복식이 거행되었다”는 짧은 소식이 실려 있었다.

가톨릭신문 1965년 12월 12일 자 제498호 3면에는 ‘주내공소 4일 준공식’ 제목으로 “7년 전에 미군 제2사단의 라스디 신부가 마련하였던 720평의 대지에는 그간 그르닝 신부에 의하여 63년 11월에 74평의 공소 건물이 착공되어 벽체(壁體)까지 이루어졌던 것을 65년 3월부터는 쏠로본 및 백 신부가 공사를 계속하여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 노기남 대주교께서 이번 공사에 공로가 많은 전기 네 신부와 동 공소의 최정순 회장, 남화상 총무에게 감삿장을 김창석 부주교님이 수여했다”고 게재돼 있다. 이로써 주내공소가 네 명의 미 군종 신부의 도움으로 100여 명의 공소 신자들이 힘을 보태 1958년부터 7년간의 대지 매입 작업과 공사 끝에 1965년 12월 4일 봉헌한 것을 확인했다.

아쉬움이 남았다. 미군 잡지와 언론 기사도 뒤졌다. 바로 미국 필라델피아대교구 주간지 ‘가톨릭 스탠다드 앤 타임스(The Catholic Standard and Times)’ 1966년 1월 6일 자에 실린 주내공소 기사다.

“한국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는 지난달 초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을 때 파주리 신자들로부터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그들의 선물은 최근 완공된 새 공소 건물인 ‘한국의 모후(Regina Korea)’ 성당으로, 서울에서 북쪽 25마일(약 40㎞)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1961년에 건립하기 시작해 지역 200가구 가톨릭 신자들이 주한 미군 제2사단 소속 군인들과 협력해 지었다. 건축 감독은 군종 신부들인 안스카 설리반 신부(Fr. Anscar Sullivan)와 프랭크 S. 벡 신부(Fr. Frank S. Beck) 였다.
주내공소는 장방형 강당 형태의 단순한 구조로 지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직전에 봉헌된 성당이어서 초기 내부는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주내공소 내부.

미 군종 신부 4명과 신자들 힘 합쳐 건립

두 신부는 성당 건축을 감독하는 것 외에도 공소 신자들을 위해 매일 미사를 봉헌했다. 콘크리트 블록의 거친 골조, 흙바닥, 그리고 재활용된 목제 지붕으로 지은 이 건축물은 이제 아름다운 성당으로 변모했다.

“‘한국의 모후’ 성당은 동양적인 모티프로 설계됐다. 성당 바닥은 유색 시멘트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상부 내벽은 마호가니 하부 패널 위에 황금빛 치장 벽토로 마감됐다. 천장은 합판 패널로 처리됐다. 성당을 지탱하는 보들은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영적 힘을 상징한다.”

한국과 미국 교회 언론에 소개된 주내공소 봉헌 관련 기사를 종합하면, 주내공소는 라스디·그르닝·안스카 설리반·프랭크 S. 벡 신부 등 4명의 주한 미 2사단 군종 신부와 최정순 회장, 남화상 총무 등 공소 200가구 신자 100여 명이 힘을 합쳐 세웠다. 1958년 2380㎡ 대지를 매입하고 1961년부터 245㎡ 규모의 성당을 지어 1965년 12월 4일 서울대교구 부주교(오늘날 총대리) 김창석 신부 주례로 ‘한국의 모후’를 수호자로 봉헌식을 가졌다.

주내공소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파발로 33-31에 자리하고 있다. 지번으로는 파주시 파주읍 파주리 198이다. 조선 시대 파주 읍치다. 파주목의 중심을 ‘파주 안쪽’이라 하여 ‘주내(州內)’라 불렀다. 이후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주내면과 백석면이 통합됐고, 1980년 12월 주내읍으로 승격, 1983년 2월 파주읍으로 개칭돼 지금에 이른다. 1969년 말부터 차례로 주한 미군 2사단이 철수하고, 2009년 서울~문산 간 ‘경의선’ 개통으로 파주시청이 금촌으로 이전함에 따라 파주읍 주내는 빠르게 쇠락해 평범한 시골 마을이 됐다.

파주목 관아는 조선 시대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로(義州路)에 위치한 경기 북부 지역의 교통 요지로 임금이 개성 제릉과 후릉, 파주 영릉과 장릉을 능행할 때 머물던 장소다. 또 조선 왕조 치하 박해 당시 중국으로 가던 조선 밀사들과 최양업·최방제·김대건 신학생이 유학길에 오를 때 거쳐야 했던 곳이다. 주내공소와 파주 관아 자리였던 파주초등학교까지는 1.4㎞ 거리다.

파주목은 또 임진강을 끼고 서울을 방어하는 조선 시대 군사 요지다. ‘파발’이 이용하던 역참이 있었다. 주내공소 도로명이 ‘파발로’인 이유다. 그 명목을 이어 휴전 후 주한 미군은 파주 일대와 임진강 주변 지역에 100개 이상의 기지를 건설했다. 파주읍에는 1953년부터 미 2사단 예하 부대가 주둔했고, 봉서산 정상에는 현대판 파발인 레이더 기지를 뒀다.

본당조차 아직 설립되지 않은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미 군종 신부들이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줬다. 그들은 성당 터를 매입해줬고 건축자재도 마련해줬다. 한국인 신자들은 노동을 제공했다.
‘지게 진 예수상’.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제단 십자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도와 희생했던 ‘지게 부대’ 민간인들과 인간 구원의 무거운 짐을 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민간인 A 특공대와 ‘지게 진 예수상’

주내공소는 장방형 강당식으로 단순하게 지어졌다. 그래도 종탑에 종을 설치하고, 성당 문틀 위에 도움을 준 미 군종 신부들의 명패가 새겨져 있다. 60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맨눈으로 판독하기가 어렵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막 폐막하던 때에 성당이 지어져 내부는 지금 모습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제단 십자가. ‘지게 진 예수상’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제단 십자가일 것이다.

‘지게 진 예수’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을 도와 지게에 40~50㎏의 탄약과 군수 물자를 지고 고지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민간인들을 연상시킨다. 지게 모양이 ‘A’를 닮아 미군들은 ‘A frame army’(A 특공대)라 불렀다. 아마 그 감사의 뜻으로 ‘지게 진 예수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더불어 지게는 짐뿐 아니라 사람도 지고 나른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게 진 예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의정부교구에는 4개 공소가 있다. 그중 미 군종 신부가 지어 설립한 공소가 2개소다. 파주에 있는 주내와 장파리 공소다. 장파리공소는 임진강에 다리를 설치하다 목숨을 잃은 미군들을 추모하고자 지어졌다. 주내공소는 함께 삶의 자리에서 가톨릭 신앙을 공유하는 한국인 신자를 위해 미 군종 신부가 지었다.

주내공소는 26명의 공소 신자들이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옥영두(요셉) 공소회장은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사람 좋고 성당 좋고 다 좋다”고 했다. 그리고 “생전 김수환 추기경님이 자주 방문하셔서 쉬셨을 만큼 평온한 곳”이라며 “많이 찾아달라”고 말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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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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