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1982년부터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며,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기억하고 교회가 이 땅의 소외되고 약한 이들 곁에 가까이 서 있는지를 묻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06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를 통해 “이민과 실향민은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람들”임을 상기시키며 “그들을 만날 때 우리는 더 잘 알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인권 주일을 맞아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 우리 곁으로 찾아온 난민들과 그들을 사랑으로 감싼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주 ‘나 씨’ 다섯 남매
제주 시내 한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옥탑방. 해 질 무렵,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한 가족이 저녁 메뉴를 두고 왁자지껄하다. “오늘 저녁은 뭐야?” “오늘은 빵 먹을 거야.” “난 과자 먹을래!”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떠드는 이들은 고향 예멘을 떠나 7년째 ‘제주살이’를 이어가고 있는 나디아(28)와 나데르(17), 누프(15), 나와프(14), 나덴(13) 오 남매다.
여느 저녁 풍경처럼 밝은 표정으로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다섯 식구의 얼굴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2018년 예멘 내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떠나 약 8000km 떨어진 제주에 발을 내디뎠다. 탈출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었고, 함께 온 아버지마저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해 1년 만에 강제 출국 명령을 받고 제주를 떠나야 했다.
언어와 음식,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른 땅에 남겨진 다섯 남매의 삶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맏이 나디아는 어린 동생들의 엄마이자 아빠가 됐다. 그는 “낯선 음식과 사람들의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지만, 동생들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나디아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에 시작된다. 가장 먼저 일어나 동생들의 아침을 챙기고 출근길에 나선다. 귤 농장에서 귤을 따고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내고, 동생들에게 필요한 물건도 산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기는 해도 동생들 얼굴만 보면 힘이 나요. 동생들은 제게 기쁨이자 자랑이에요.”
나디아의 돌봄 속에서 동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라나고 있다. 둘째 나데르는 학교에서 스포츠 리더로 활동하며 친구들과 운동을 이끌고, 셋째 누프는 F1 드라이버와 헤어디자이너라는 전혀 다른 두 꿈을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왔어요”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넷째 나와프도 영락없는 10대 소년으로 자라고 있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6살이던 막내 나덴은 어느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초등학교 과정(PYP)에 참가해 친구들과 ‘빈곤 퇴치’를 주제로 발표해 상을 받기도 했다. 어떤 내용을 발표했는지 묻자 나덴은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로 ‘간식 안 먹기’를 발표했어요”라고 말했다.
제주, 남매들의 터전이 되다
지난 시간 동안 다섯 남매가 제주에서의 일상을 이어가는 데는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다. 교회는 남매들을 외면하지 않고 곁에서 손을 내밀었다. 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나오미센터(센터장 이건용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는 아버지를 타국으로 떠나보낸 이들을 찾아 정착과 생활 등 전반을 지원해 왔다. 현재 이들이 살고 있는 옥탑방도 센터가 마련해 준 공간이다. 센터는 동생들의 생활 지도를 맡아 곁에서 살피고 있다.
또한 처음 제주에 도착했을 때 다섯 남매를 집으로 들여 약 한 달 동안 함께 지낸 이선자(연희 마리아·제주교구 주교좌 중앙본당) 씨 가족과, 먼 미래를 위해 나디아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며 오버로크 기계와 재봉틀까지 선물한 부선자(아녜스·제주교구 주교좌 중앙본당) 씨도 곁을 지켜 온 이들이다. 이 씨는 “같이 생활하다 보니 언어와 문화가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매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나데르는 “다들 우리 남매를 잘 챙겨 주신 덕분에 제주에서 잘 적응해 지낼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갖고, 뭐든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이 지금까지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섯 남매의 삶이 완전히 안정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인도적 체류’ 자격으로 머무르고 있다. 1년마다 체류 연장을 신청해야 하며, 취업과 장기적인 미래는 물론 이곳에서 얼마나 더 지낼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키우고 있는 꿈은 분명하다. 바로 이곳에서 정착해,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다. 나디아가 동생들의 저녁을 챙기고 난 늦은 시간에도 재봉 연습실을 찾는 이유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천들을 자르고, 바느질하기를 반복하며 밤 10시가 돼서야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나디아 곁에는 그의 꿈을 가장 가까이서 응원하는 동생들이 있다. “직접 만든 손가방과 소품들을 언젠가 판매하고 싶어요. 이곳에서 동생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커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싶어요. 그동안 우리를 위해 고생한 누나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사 줄 거예요.”
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나오미센터’는 제주 지역 이주노동자와 난민, 다문화 가정을 위한 상담과 의료 지원, 교육, 통역, 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센터는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며 한국 생활을 돕고 있다. 한국어와 모국어 교육은 물론 독서·논술, 영화, 미술, 악기 등 아이들의 정서·학습 발달을 위한 교육도 한다. 이 외에도 가족 캠프, 심리치료와 생활 전반 지도를 통해 아이들이 학교와 지역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센터명 ‘나오미’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던 룻이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보살피고 이끌어 준 성경 속 나오미에서 따왔다. 나오미가 룻을 도왔듯, 센터는 제주에 찾아온 이들이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4년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미사 요청에 따라 영어 미사를 개설하고, 미사 후 의사와 약사 등의 무료 진료까지 펼친 것이 센터의 초석이 됐다. 교회의 ‘환대’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적과 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이웃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며, 2018년 제주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입국했을 당시 교구와 함께 난민들의 거처 마련과 생필품 지원, 긴급구호 등을 맡았다. 나오미센터 김상훈(안드레아) 사무국장은 “더 나은 삶을 찾아서 움직이는 건 모든 인간의 권리이자 본능일 것”이라며 “우리를 찾아온 이가 난민이든, 이주노동자든 누구나 너그럽게 품어 줄 수 있는 센터를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