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우리 몸을 만드셨다고 전합니다. 우리 몸은 하느님 모상에 따라 하느님 손길로 만들어졌고, 그분 숨결을 받아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육체와 영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혼과 육신을 두 개의 분리된 실체로 보지 않고, 인간 안에 하나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몸의 신학」을 통해 “몸이 단순한 물질적 도구나 외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격과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고 전달하는 ‘가시적인 성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 생명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며 가장 근본적인 가치, 기본권 중의 기본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홀로 있지 않도록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창세 1,27), 그들의 결합이 인격들의 친교의 최초 형태를 이루게 됩니다. 인격들의 친교는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이 이루는 사랑의 친교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그러한 친교의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 사랑과 삼위일체적 친교의 신비를 담고 있으며 특히 남자와 여자라는 오직 두 가지 성을 통해 그 신비가 원초적으로 계시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랑과 책임」을 통해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사랑의 소명에 부합할 수 있는지, 사랑의 세 가지 요소(매력·욕구·선의)를 설명합니다. “사랑은 더 높은 차원으로 성장하고 내적으로 정화해 가며 이제 결정적인 사랑이 되고자 합니다. 결정적인 사랑이란 오로지 이 사람뿐이라는 ‘배타’와 ‘영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사랑은 시간을 비롯한 온 삶을 끌어 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의 약속은 궁극적인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6항) 이는 남녀의 사랑이 서로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혼인적 사랑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인간은 혼인 서약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시간을 비롯한 온 삶을 끌어 안는’ 사랑을 해야 하며, 비로소 부부 사이에서 몸과 마음을 서로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인격들의 친교의 원형을 보게 됩니다.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